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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Dec 01. 2015

그릇, 매일 나를 만나다

나를 닮은 그릇 이야기, 그릇을 닮은 나의 이야기

아침에 눈을 뜬 후 5분 간, 나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움직인다.


"눈을 뜬다. 고양이 자세로 스트레칭을 한다. 화장실에 간다. 사과를 깎는다."


고향집에 가거나 여행 중일 때를 제외한 일 년의 300일 이상은 똑같은 순서로 움직인다. 매일 아침식사는 사과 한 개, 바나나 반 쪽, 견과류와 직접 만든 요구르트다. 유산균을 위한 나무 숟가락 사용도 잊지 않는다. 자취생 치고 꽤 훌륭한 식사다. 이 식사는 나의 유일한 시리얼 볼에 담아 먹는다. 미우나 고우나 일 년에 300일 이상은 이 그릇과 마주하는 셈이다.


나는 그릇을 좋아한다. 혼자 살지만 샐러드 접시, 디너접시, 스프볼, 디저트 접시, 오벌 접시, 서빙 접시 등등 꽤 많은 종류의 그릇을 층층이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얼 볼은 단 하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건 딱히 손님에게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오면 식사를 하거나 디저트를 먹지, 아침을 먹을 일이 그다지 없다. 그래서 하나면 충분. 더 필요가 없는 게 시리얼 볼이었다.


시리얼 볼은 참 현대적인 그릇이다. 시리얼이라는 음식 자체가 그렇듯, 이건 오로지 현대 미국 가정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다. 매일 아침 출근과 등교에 바쁜 가정의 식사를 시리얼이 대신하듯, 시리얼 볼 역시  이런저런 그릇을 꺼낼 필요 없이 팩에 든 우유를 그대로 부어 먹을 수 있도록 최적화됐다. 그만큼 뒷정리도 간편하다. 막 쓰는 그릇인지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브랜드에서는 시리얼 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시리얼 볼은 나의 대표적인 일상이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이 그릇은 대충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디자인으로 집어 온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많은 그릇들 중에 나와 가장 닮아있는 그릇 역시 이 녀석이다. 간략히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튀지 않음

(2) 단정함

(3) 포멀해 보이는 첫인상

(4) 유머 없음

(5) 뻔함. 딱딱함.

(6) 꾸미기 어색함


이 녀석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써왔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날, 그릇의 한 쪽이 깨진 걸 발견했다. 어른들은 이 나간 그릇은 쓰는 게 아니라시던데, 버릴까 싶었다. 조각은 이미 깨져버렸고, 붙일 수도 없다. 보완이 안되니 선택은 둘 중 하나. 버리던지. 그냥 쓰던지.  뭐, 딱히 쓰는 데 불편함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 상태로 더 썼다. 쓰다 보면 익숙해져서 이 정도의 흠집은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늘 아침에 보니, 이 나간 이 녀석이 더욱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보면 하자 있는 물건이고, 그래서 바꿔야 할 것 같고, 그냥 두는 건 잘못된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뭐, 그리 볼 수도 있겠지. 이해는 된다. 타인의 시서에 대한 나의 선택은 또 둘 중의 하나다. 수용 혹은 무시. 이미 누군가의 시선에 하자 있는 물건으로 찍힌 이상 내 그릇이 어느 날 갑자기 명품처럼 보일 리는 없으니 '타협'이란 걸 기대할 순 없다.




뭐, 나는 내일도 사과와 바나나와 견과류와 직접 만든 요구르트를 이 나간 내 그릇에 담아 유산균을 배려한 나무 숟가락으로 내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다. 난  문제없이 쓰고 있는 내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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