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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May 19. 2024

'단독성 사회'란. 무엇인가?


  2002년에 작고한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9년에 <구별 짓기>라는 저서를 출간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용어를 개념화했는데, 아비투스란 개인의 취향은 배경과 환경, 가치관, 분위기, 종교, 사상,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는 “나의 집과 나의 몸, 나의 취미와 학력은 나의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연줄, 학연, 집안의 아비투스가 촘촘하게 새겨지면서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사회계급별로 차별화되어 재생산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르디외는 문화만큼 각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차별적으로 소비되고 완벽하게 차별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없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부르디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업자본주의를 문화자본주의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회학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교수입니다. 지난 2세기 동안 마르크스와 베버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레크비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를 받는 그는, “지금의 경제는 갈수록 단독적인 물건, 단독적인 서비스, 단독적인 사건을 지향하고, 경제가 생성하는 재화는 순전히 재화의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문화적으로 함축된 의미까지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주장하지요. 그래서 현대를 ‘단독성 사회’로 명명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편성의 사회 논리가 지배했다면 앞으로는 특수성의 사회 논리에 지배권을 내어주는 사회적 구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취향과 소비에서부터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서 발견됩니다. 지식 경제와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문화자본주의가 경제의 중추로 들어선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더 많이 주목받고 더 많이 보여주려는 투쟁이 벌어집니다. 더 독특한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다름과 차이를 찬미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합리성에 맞서서 문화적 저항의 흐름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크비치 교수는 보편화와 단독화라는 개념을 대비시키고, 이와 함께 합리화와 문화화도 대비시키면서 두 개의 사회구조와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단독성 사회의 폐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요. 개인의 자율성과 독특성은 드높이나 여러 형태의 위기가 몰려옵니다. 단독성 사회의 주류인 고 능력자는 잘 적응하고 있지만 단순 서비스직 종사자 등은 자기 모멸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 능력자도 승자독식 구조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항상 느끼고 있고, 실제로 다수의 고 능력자가 시장에서 실패하여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매력과 취향에 대한 소비자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관심을 얻는 데에 성공하여도 언제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과잉 스트레스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우울증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시장 법칙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고, 정치적으로도 종교 근본주의나 우익포퓰리즘이 등장할 수 있다고 레크비츠 교수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토대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사회가 파편화됩니다. 그래서 다시 보편성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교수는 그동안 ‘차이를 지향하는 개방적 자유주의’ 정치 패러다임을 억제하는 ‘규제적 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에서 ‘규제적 자유주의’란 국가와 제도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을 말하며, 다시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으로 되돌아가는 양상도 여기저기서 감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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