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자로부터 폭행과 심한 모욕을 당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갑의 횡포’로 보도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갑을 관계’는 수없이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원래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서 계약당사자를 ‘갑’과 ‘을’로 대신해 표기한 데서 유래된 용어이나, 일반적으로 ‘갑’은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을’은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갑을 관계는 권력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그러나 권력관계라고 볼 수 없는 ‘연애’에서도, 즉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면 좀 의아한 일인가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83.5%가 연인 사이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인 사이에도 상대에 대한 호감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을’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행동하고 자신은 희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자신도 모르게 을의 행동을 자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다툼이 생겼을 때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할는지 몰라 고민하다가 먼저 사과를 합니다. 즉 본인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과하니까 ‘영혼 없는’ 아니면 ‘진정성 없는’ 사과인 것이 되겠지요. 이렇게 진정성 없는 사과가 여러 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관계는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무조건 갑이 되고 한 사람은 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대부분은 을의 착각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연애나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사랑에 대한 기준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상대방의 태도를 오해하게 되지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가치만큼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 주길 원한다면 매일 언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상대방의 성격도 작용하지요. 무뚝뚝한 사람은 누굴 만나도 상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 갑을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나는 10개만큼 주는데 너는 하나만 준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성격이나 표현 방법을 고려하여 그 특징을 존중해 주어야 하겠지요. 서로 사랑의 온도가 다르다고 생각할 때 불안한 마음이 들고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결국 이별의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도 사랑의 연장이라고 하지만 결혼한 부부의 갑을 관계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요. 그것은 상대의 성격이나 표현 방법 등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갈등은 있을 수 있어도 갑을 관계가 존재하여 다툴 일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애하는 분들 중에 내가 을이라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서로 파트너가 된다고 생각하십시오. 상황에 따라서 어느 때는 내가 갑이 되고 어느 때는 내가 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제안을 한다면, <종의 기원>에서 처음 언급한 공진화(共進化) 개념을 연인 사이에도 적용하라는 권고입니다. 공진화는 ‘서로 영향을 미쳐 함께 진화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과 생각만을 고집하지 말고 어느 때는 이익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갑을 관계가 있을 수 없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이 돈독히 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