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37회 6.10 민주항쟁 기념일입니다. 엄숙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저의 삶 속에서 경험한 6월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5월까지는 정신없이 지내면서도 세월을 의식하지 못하는데, 6월이 되면 ‘벌써’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6월은 봄과 여름의 경계에 서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지요.
이미 오래전에 작고하신 피천득 선생님은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오, 모란의 달”인데, 6월은 “원숙한 여인의 품처럼 녹음이 우거지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독 6월에 대한 시를 많이 쓴 이해인 시인은 <6월엔 내가>라는 글에서 “숲 속의 나무들이 / 일제히 일어나 / 낯을 씻고 / 환호하는 6월 / 6월엔 내가 / 빨갛게 목 타는 / 장미가 되고 / 끝없는 산향기에 / 흠뻑 취하는 / 뻐꾸기가 된다”라고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지요.
도종환 시인도 6월이 오면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며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 감자꽃만 피어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까지 저에게 6월은 위의 세 분이 느끼는 자연의 변화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혼란과 공포, 저항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시간입니다. 6.25 전쟁, 6·3 사태, 6월 민주항쟁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 전투기의 굉음 소리, 멀리서 들리는 대포 소리, 겁에 질려 당황하는 어른들의 그늘진 표정이 어린 저를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전쟁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최루탄 가스가 6월의 하늘을 뒤덮고 캠퍼스 곳곳에서는 함성과 몸싸움이 드높을 때 저는 한일 협정 반대 데모를 하면서 ’ 민족주의적‘ 감정을 아낌없이 쏟아내었지요. 지난번 아침단상 358(5월 28일 자)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푸른 옷을 입고 어느 독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읽던 책을 내던지고 낡은 모포로 얼굴을 감싸면서 땀인지 눈물인지를 계속 닦아내면서 상당히 심각해 있었지요.ㅔ
그러다가 교수가 되어 6월 민주항쟁을 맞았습니다. 아무런 행동도 외침도 없이, 저는 젊은이들이 목숨 걸고 투쟁하여 일궈낸 민주화의 성과와 그 환희에 무임승차 했습니다. 사회 안정, 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양비론적 논리로 나약한 지식인의 군상이 된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기민함을 보였습니다. 사실 6월 민주항쟁을 제외하고도 한국 정치의 변화에 영향을 준 사건은 4.19 혁명, 2016년의 촛불 집회 등 많이 있으나 오늘은 6월에 일어난 사건들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간에 따라서 옅은 녹색 잎이 점점 짙어져 가고 그것이 다시 단풍으로, 또다시 낙엽으로 갈아입을 것이니 문득 머문 듯 지나가는 것이 세월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