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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l 02. 2024

이응노미술관, 김윤신 기획전


  지난주부터 이응노미술관에서는 기획전으로 <김윤신-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파리 유학을 계기로 이응노와 만나게 됩니다. 올해가 1964년 김윤신과 이응노가 파리에서 만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1984년 김윤신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오롯이 창작에 매진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들 두 예술가의 조우와 김윤신 작가가 먼 타향에서 이룩한 창조적 열정과 그의 작품 세계에 주목하여 회화와 조각 4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007년 5월, 대전에 개관한 이응노미술관은 이제 대전 지역 예술계의 자랑이자 대전 시민의 자존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이탈리아를, 피카소가 프랑스를,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격을 높이고 정신문명을 풍요롭게 한 것에 비유한다면 큰 과장일까요?


  이응노미술관에서 고즈넉한 아침 시간을 맞이하면, 쪽마루로 길게 이어진 복도 쪽 통유리로 대나무 몇 그루가 조용히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평소 대나무를 잘 그려 청년 시절 스승으로 받은 호가 ‘죽사(竹史)’였다는 화가 이응노는 살아생전 자신의 그림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염원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군상(群像)‘ 시리즈는 그런 그의 바람을 대변하는 듯 미술관 입구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이응노는 회화뿐만 아니라 서예, 도자조각 등 장르를 초월한 활동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문자추상은 자연의 형태를 추상화하거나 음과 뜻을 획과 점이라는 조형적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한자와 서예에서 동양적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한 획기적인 업적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이응노의 문자추상을 이전에 접했더라면 ’ 애플‘의 상징 대신 이응노의 ’ 문자추상‘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김윤신은 1984년 조카가 사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이후 남미의 풍요로움과 다채로운 천연자원에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합니다. 그로부터 40여 년간 김윤신은 자연주의에 기반한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예술 언어를 구축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응노와 김윤신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디아스포라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예술적으로는 “자연과 내가 하나로 융합되고 예술가가 자연을 완전히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독자적인 예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 자연적 추상성‘이라는 점에서도 맞닿아 있습니다. 9월 22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이 전시에서 김윤신을 통하여 이응노를 회상해 보고 이응노를 통해서 김윤신을 재조명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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