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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l 11. 2024

김신지 시인의 <내 안의 풍경>


  최근에 대전 출신, 김신지 시인은 네 번째 시집 <내 안의 풍경>을 출간하였습니다. 김신지 시인은 좀 특이한 시인 이력을 가졌지요. 전공은 교육학인데 60대 중반인 늦은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등단하자마자 주변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특히 그의 초기작품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는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 시는 “일그러진 가방 속 / 가스실 안으로 / 살아 있는 안경들이 걸어왔다”로 시작하여 “녹슨 철조망을 두드리는 비는 / 그 밤 내내 /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로 끝을 맺는데, 마치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여류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끝과 시작’에서 쉼보르스카는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로 시작하여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 이 풀밭 위에서 /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 이삭을 입에 문 채 /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김신지 시인은 첫 시집 <화려한 외출>에서 시를 쓰는 이유로 “견딜 수 없는 날들, 그런 시간들이 내 곁을 서성일 때, 몇 글자라도 토해내고 나면 그런대로 나만의 평안을 막연히 느낄 때가 있었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네 번째 시집 <내 안의 풍경>에서는 “두툼한 어둠이, 늘, 내 곁에 서성였다. 걸어온 것이 기쁘다 …”고 비교적 짧게 밝혔습니다.


  <내 안의 풍경>을 통한 김신지 시인의 시를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깊은 시”라고 평가했습니다. 김종회 평론가는 김신지 시인의 과거의 시집을 읽고는 “작고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값있고 품격 있는 사유가 숨어 있다”라고 썼는데, 이번에는 “세상사의 문리(文理)에 유연해지고 한 걸음 더 온전한 삶의 문법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라고 같은 듯 좀 다른 해석을 했습니다. 저도 평론가의 지적에 공감하면서, 이번 시집에 들어 있는 ‘여든에 이르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무엇을 두고 온 것처럼 / 마치 무엇을 잃은 것처럼 / 자꾸만 뒤돌아본다 / 아득히 자취 없는 시간만 서 있다 / … /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는데 / 하루가 온종일 겨울 같은 날 / 마음에도 사계절이 있다는데 / 봄날은 오지 않는 가슴이다 …” 그러면서도 김신지 시인은 “부피도 무게도 모르는 고통 환란도 부둥켜안고 있는 마음의 은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평론가는 그를 “시의 내면에 또는 배면에 잔잔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깔린 신앙심의 현상”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지구상에 진정으로 ’ 쉽게 쓰인 시‘는 단 한 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에 와서 시가 잘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 홀로 자신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마음에 묵은 때를 닦아내는 노력과 성찰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는데 이번 김신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김신지 시인이야말로 홀로 자신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마음에 켜켜이 쌓인 묵은 때를 닦아내는 성찰의 결과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김신지 시인이 말한 대로 우리 모두 “여든 강물 위로 윤슬이 꽃피어오르도록”,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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