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홍철 Aug 22. 2024

속물근성



  우리는 ‘속물근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어원을 굳이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속물근성이라는 말의 어원은 1820년대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일반 학생을 귀족과 구별하기 위해 그 이름 옆에 ‘작위가 없다’라는 뜻으로 ‘s. nob’로 표시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속물근성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고, 권력의 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존경의 대상과 정도가 바뀌곤 합니다. 이들은 돈과 명성 그리고 영향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 배경을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는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를 당하는 것은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에게 속물적인 세상이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 된다는 것입니다.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불안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저서를 낸 바 있는데, 거기에 의하면 불안의 해소 방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종교, 보헤미아 등을 들었는데, 저는 여기에 더해 속물적 근성을 새로운 가치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이야기를 나눌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할지라도 위축되거나 상처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시민이라 할지라도 책 읽고, 걷고, 음악 들으면서 거기에 담긴 가치에 공감하며 담담하게 살아간다면 자신에 대한 속물적 평가들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돈이나 지위에 대한 우리들의 걱정과 불안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인식하고 위대한 종교적 삶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아보십시오. 또한 ‘퇴폐적’, ‘방랑적’ 속성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헤미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한 대로 세속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으나, 그런 와중에도 희망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잠시라도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한 불안을 내몰아서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사랑과 여유로 마중하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또다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일체유심조’를 꺼내 들고 싶네요.

작가의 이전글 진리의 양면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