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는 추석 연휴에 접어드니 이제 감히 가을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고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낭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오늘은 거창한 주제를 잡아보았습니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인간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또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이러한 소중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서 송시를 썼지요.
“인간은 과연 대단한 작품이로다!
이성은 얼마나 숭고한가!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가!
자태와 거동은 얼마나 분명하고 경탄스러운가!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은가!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인생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또는 그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맞지 않습니다. 사실상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주제가 “인생에 답하라” 였는데, 그것을 ‘인생의 답을 찾다’로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지요.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많이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얼굴이 모두 다릅니다. 학생들이 살아온 환경도 다 다를 것입니다. 물론 성격도 다르겠지요. 유전적 조건이 똑같은 일란성쌍둥이의 운명도 똑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생의 정답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는 탄생이래 단 한 번도 같은 날씨를 반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똑같은 날씨처럼 보이고 느끼지만, 사실은 다른 날씨입니다. 이미 작고하신 어느 원로 철학자는 자신은 인생의 답을 찾아 평생 헤맸지만, 결국 답이 없다는 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답을 준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우리 인간 자체가 변화무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육체가 변하고, 우리 마음이 변하고, 우리 생각이 변합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일주일 전이나 앞으로 일주일 후나 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것이 다 변해갑니다.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이렇게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변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새로워질 수 있도록 항상 성찰하며 사는 삶이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