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과 만나 얘기하던 중, 그 목사님은 “요즘 교회에 나오는 젊은 신자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종교에 대한 과학의 반론을 해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의견을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이런 말은 한 것은, 최근 소설가이며 사상가인 알랭 드 보통의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받은 충격이 있었기에 즉답으로 튀어나왔지요.
알랭 드 보통은 최근에 ‘현대’가 시작되자마자 “과학은 엄밀함과 탁월함으로 종교를 물리치고 인간을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켰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알랭 드 보통의 논거는, 종교가 강조하는 “숭배하고, 경외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종교보다는 과학이 더 많이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알랭 드 보통은 좀 과격한 표현으로 종교를 비판했습니다.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종교는 “얼마나 초라한가, 암흑 물질, 스트링 이론, 양자 파동 함수의 신비 옆에서 신(神)의 발명이란 얼마나 하찮은가”라고 비꼬았습니다. (알랭 드 보통, <현대 사회 생존법> 263 참조)
정말 그럴까요?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많은 논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상호 배타적’이라고 보는 견해와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배타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종교의 판단을 코페르니쿠스가 뒤집어 버렸고’, ‘인간은 신의 손길로 빚어진 창조물이라는 판정을 다윈의 진화론이 부숴버렸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상호 보완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과학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파악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종교는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에만 관계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종교는 갈릴레이나 다윈의 과학적 학설들과 맞서려 해서는 안 되고, 과학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가치 체계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사실 알랭 드 보통은 종교에 대해 참담한 평가를 하면서 예를 드는 것은, 우주의 규모, 그동안 여러 차례 대멸종을 경험했지만 생명은 회복탄력성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진화 등입니다. 그러면서 태양은 45억 년의 나이를 가졌으나, 별의 평균 수명은 80억 년에 불과하고, 태양의 밝기가 10억 년마다 10%씩 밝아지면서 지구를 점점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사실을 들면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말하였습니다. (알랭 드 보통, <현대 사회 생존법> 249-250 참조) 그러나 바로 이 점이 과학과 종교의 차이점입니다. 이미 성경(전도서 1장 2절)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점’을 자세하게 상기시켜 주었지요. 알랭 드 보통이 물리적으로 설명한 그 모든 것 자체가 사실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이 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진리 탐구를 하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는 초월적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요? 과학이 기도와 믿음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칼 포퍼가 얘기한 것처럼 과학적인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