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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만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by 염홍철


인간은 양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는 인간의 내면에는 신(神)적인 위대함이 있는가 하면, 광기와 잔인함도 공존하고, 속됨과 거룩함도 공존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산문집에는 인간의 양면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지요.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중략)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땐 공자처럼 행세하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중략)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문장입니다.


또 한 사람, 진화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근원을 파헤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도 “인간은 가장 폭력적인 종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은 가장 비폭력적이고 관용적인 종이다”라고 주장하지요. 그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진화해 왔기에 한없이 사악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관대한 걸까?라는 질문으로부터 그의 연구는 시작되는데, 인간의 폭력과 이타주의, 전쟁과 협력, 사형과 도덕 등의 역설적인 현상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강한 양면성에 맞서는 사회적 관용과 통제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물에는 이분법적으로 분류한 것도 꽤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루소의 인간의 선한 잠재력, 토마스 홉스의 일종의 성악설 등 다양하지만, 저는 이러한 분류에는 동의하기 어렵고, 오히려 랭엄 교수나 산도르 마라이 작가의 인간 본성의 양면성이라는 주장에 더욱 공감합니다.


이렇게 인간이나 매사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억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에도 양면성이 있고, 성공에도 양면성이 있으며, 돈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런 양면성이 삶의 균형을 유지해 주겠지요. 따라서 무엇 하나를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로버트 고벳이라는 성경 연구가는 “진리에도 양면성이 있다”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복수 안의 단일성’ 또는 “단일성 안의 복수”라고 설명합니다. 이래서 양면성은 세상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원칙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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