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으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또한 12월의 마지막 주말, 179명이 사망한 무안공항 항공 참사가 일어났지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앞의 정치적 사건은 아직 진행 중에 있지만, 그래서 올해의 화두로 ‘국가이익과 정의’를 삼아봤습니다.
‘국가이익과 정의’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사건이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있었던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인데, 이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유대인 혈통의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부당하게 스파이 혐의를 씌운 것을 둘러싸고 프랑스 국내에서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논란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때 프랑스의 언론인이며 작가인 에밀 졸라가 간첩의 누명을 쓴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폭로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에밀 졸라는 <로로르>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격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도 포함되어 있지요. 거기에는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의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의 부당한 구속수감을 비난한 것이었지요. (이때 발표한 11편의 시론을 모아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음)
졸라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곧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졌고, 군부나 행정부에서 “국익을 위해서라면 진실과 정의를 포기해야 할 순간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신들은 도대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어떤 교훈을 남길 수 있겠냐?”라고 되물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는 “광기, 어리석음, 기괴한 상상력, 비열한 경찰 근성, 종교 재판 식의 매도, 전제적인 폭압”의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권우,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참조) 양심이 들어설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참담한 상황에서 에밀 졸라는 이 거대한 벽에 맞서고 진실을 왜곡하는 권력자들을 당당하게 고발한 것입니다.
에밀 졸라는 “나라가 이토록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 그것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범죄자들을 보호하려는 권력자들, 진실의 빛을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기며 모든 것을 거부한 권력자들의 과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암흑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권력자들은 막후에서 온갖 음모를 다 꾸몄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끔찍한 혼란의 유일한 책임자는 바로 그들, 권력자들입니다.”라고 규정하면서, 군부, 행정부, 그리고 언론을 고발한 것입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읽으면서, 귓전에 남아있는 두 가지 문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국의 영혼, 조국의 정력, 조국의 승리는 오직 정의와 관용 속에 존재함을 기억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름지기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자는 결국 존엄하고 신성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입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포기하는 게 과연 합당한가’라는 것이 에밀 졸라가 우리에게 던진 위대한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