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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의란 무엇인가?

by 염홍철


어제, “‘연대’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라는 글을 통해, “연대의 목표는 ‘정의’여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몇몇 분이 “과연 정의란 게 있는 것인가”라고 되물어왔습니다. 쉽게 정의라고 표현했지만, 정의란 개념은 단순하지 않지요. 과거에도 논의한 바 있지만 오늘은 정의에 대해 다시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의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는 역시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수의 저서에서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특히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세 가지 주요 철학적 관점에서 논의했습니다.


첫째는 ‘결과주의’로서 공동체의 최대 행복을 달성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두 번째는 ‘자유주의’로서 각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로서 정의를 개인의 권리와 자유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 가치와 전통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이클 샌델이 정의한 정의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우리의 정의감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라고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면서 “진실을 이해하고 정의를 발견하려던 인류의 모색은 실패했다고 선언해야 할까?”라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정의에 대해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정의를 둘러싼 인과관계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정의가 무엇이냐는 단순한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유발 하라리가 구체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정의 또는 불의는 자신이 실제로 한 행동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온 것을 뜻하는데, 예를 들어 자신이 1만 달러의 석유화학 분야 주식을 보유했는데 연 5퍼센트의 투자 수익률이 나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실상 그 회사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유독성 폐기물을 인근 강에 버렸고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방어했으며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은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사전에 차단”해서 막대한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즉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그 수익의 일부를 투자자에게 주었다면 투자자도 불의에 가담한 것인지요?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도덕적 문제(정의)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도 우리 대부분은 더 이상 그럴 능력이 없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저는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면서 칸트를 소환하고 싶습니다. 칸트는 보편적 원칙에 따른 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보편적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철학적 논의를 떠나 상식적이고 순리적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긍정하는 것이 보편적 원칙이 아닐까요? 일반 대중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대개 알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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