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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다'의 교훈

by 염홍철



‘더듬다’는 말이 있지요. 누구나 쉽게 아는 말이지만, 사전적 의미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며 찾는다” 또는 “똑똑히 알지 못하는 것을 짐작하여 찾다”는 의미입니다. ‘말을 더듬는다’고 하면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손으로 더듬는다’고 하면 목표를 정확히 모르면서 대충 탐색한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이렇듯 ‘더듬다’는 뜻은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혁신적인 물리학자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일을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으니까 “나는 더듬는다”는 의외의 대답을 하여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염홍철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25~27 참조)


그래서 ‘더듬다’라는 말의 뜻을 더 깊이 파고들고 싶습니다. ‘더듬다’는 어두운 곳에서 무엇을 찾는 일일 수도 있고,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이 서툴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난간을 만지면서 느낌으로 길을 찾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난간의 나무 가로대와 콘크리트 기둥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장인(匠人)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감각이나 촉각으로 느끼는 더듬거리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듬다’는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겠지요. 혁신적인 일은 쉽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도 없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듬거리면서,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까지도 더듬는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더듬다’는 것은 사물의 표피를 만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저는 ‘사람은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착각이며 교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하나하나 확인하고 확신이 생겼을 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비롯하여 경영자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대학>에 나오는 사자성어를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놓았다고 하지요. 이것도 ‘더듬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가면 앎에 이른다”는 뜻인데, 더듬는 자세로 끝까지 탐구함으로써 ‘보물’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더듬다’로부터 겸손과 끈기, 앎에 이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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