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시장 재직 시,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대전을 만들겠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이 글이 인터넷에 뜨니까 갑자기 검색 순위 1위에 오르고, 여기저기서 항의성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보헤미안(Bohemian)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와 ‘게이(Gay) 지수’와의 혼동했기 때문에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서 나온 해프닝이었습니다. “당신은 기독교 신자라고 들었는데 동성결혼을 허용한다고요? 말이 안 됩니다.” 등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보헤미안의 사전적 정의는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라고 되어 있는데, ‘보헤미안 지수’라고 하는 것은 그 지역의 보헤미안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를 통해 한 도시의 창의성과 예술적 환경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도시의 경제성장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인데, 이것은 당시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의 ‘도시 창조성 이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덕연구단지와 유사한 프랑스 최대 첨단산업단지인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방문한 바 있는데, 이곳은 하이테크 산업이 밀집한 창조적 중심지로서 ‘보헤미안 지수가 높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를 이끄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창조계급이고, 창조계급이란 과학자, 기술자,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예술가, 음악가 그리고 창조성을 중요한 업무 요소로 활용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전을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도시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창조 계급>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3T를 강조하였는데, 도시에 살고 있는 인재(Talent)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기술(Technology), 그리고 삶에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Tolerance)이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열쇠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한 것은 다양성과 관용이었는데, 이것이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헤미안 지수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구조사에서 상위 20위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지역 중 12곳은 상위 20위 하이테크 지역에 줄곧 랭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지역은 그만큼 자유분방한 창조적인 계급들이 집결하고, 이는 곧 지역경제와 직결되었다는 것이지요. 인종이나 종교, 성별도 아닌 보헤미안 지수라는 것이 아직은 전통적 정서에서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그 사회의 포용력과 유연성, 창의성, 다양성, 관용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하는 그의 이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염홍철의 아침편지, 2014> 304~5쪽 참조)
이미 오래전부터 대전은 인간의 욕망이 명멸하는 고층빌딩과 교통체증의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하이테크가 공존하는 다양성과 관용의 공간, 즉 아티언스 도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한 창조 도시에서 요구하는 인재와 기술에 관용을 더욱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관용이 ‘사회적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안할 때, 대전에서의 ‘사회적 자본’의 강조는 우연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