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어느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요. 어렸을 때 자신의 성(性)을 바꿨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금슬 좋은 부부도 이혼을 상상해 본다든지, 속세를 떠나 신부나 수녀 또는 스님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심리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일탈의 심리’겠으나, 법정 스님이 얘기한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떠나는 출가의 정신”일 수도 있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일탈을 개인의 무의식적인 충동과 내면화된 사회적 요구 간에 나타나는 갈등이라 했지만, 제가 느끼는 일탈은 순간적 탈출 정도입니다.
얼마 전, 맘먹고 일상을 탈출하여 바다로 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신문과 전화도 끄고 인터넷도 끊었습니다. 바다에 나가 마음을 비우고 무심히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홀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봤습니다. 자연히 표정도 심각해졌고 발걸음도 무거워졌습니다. 스스로 저 자신이 고독한 존재라는 분위기에 빠져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러한 제 모습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셔츠 속을 스쳐 가는 하얀 바람을 느끼면서 외로움을 스스로 만드는 것에 대한 멋쩍음입니다.
짧은 일탈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오히려 일상적인 모든 것이 소중해졌습니다. 일상을 빨리 되찾고 싶었습니다. 신문도 보고 전화도 걸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친구나 가족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결행한 일탈은 오히려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행복은 이웃이나 가족과 함께할 때 더 커지게 됨을 확인했습니다. 일상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음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프로이트 학파의 일탈 심리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탈의 역설’을 발견하고 돌아온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