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by 염홍철


항상 종점 근처에서 버스를 타는데, 그날따라 버스는 만원이 되어왔습니다. 당연히 빈 좌석이 없었지요. 버스 안에서 학생과 눈을 마주치면 혹시 자리를 양보한다고 할까 봐 일부러 다른 곳을 응시하였습니다. 학생들한테 자리 양보를 받으면 그렇게 즐겁지는 않습니다. 학생의 태도는 착하지만, ‘약자’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싫지요. 만원 버스라 나와 대칭으로 뒤에 서 있는 학생이 매고 있는 백팩의 배가 너무 불러 제 허리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 학생도, 저도 옆으로 옮길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었어도,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집 근처 벤치에 먼 산을 보며 담배를 깊게 들어마시는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 ‘쿠팡이츠’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을 보니, 그 사람은 배달 라이더인 것 같습니다. 무표정하고 까맣게 탄 얼굴로 휴식을 취하는 그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평소에 배달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며 달릴 때, 위험함을 느껴서 좋은 인상이 아니었는데, 그날 벤치에 앉은 그 배달 라이더를 보니 전과는 다른 연민을 느꼈습니다. 위험하고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거리와 골목을 누비는 그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가족을 생각하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또는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이니 전혀 힘들지 않네’라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눈물 고인 다짐을 하는 배달 라이더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어디 이런 것들뿐이겠습니까? 언젠가 역 근처를 지나가는데 길게 앉아 있는 노점상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사람이 손 내밀어 채소와 나물 한 다발을 고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데, 그때 할머니의 표정과 깊게 파인 주름살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걷는데, 갑자기 아이가 창 너머 빵 가게를 쳐다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을 사줄 수 없는 엄마의 그늘진 표정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얼마 전 경상도 산불에서 집을 다 태워버리고 오갈 데 없는 넋 나간 아낙네의 울부짖음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리고, 당선되면 목에 힘주면서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에게 착한 척하는 어느 정치인의 ‘비굴한 웃음’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사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말은 안톤 슈나크의 수필 제목이지요. 그의 슬픔에는 낭만이 깃들어 있었는데, 제가 맞이한 슬픔들은 삶의 어두운 측면들이네요. 안톤 슈나크는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나 “작은 새의 사체 위에 초라한 따스한 햇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톤 슈나크와 우리가 똑같이 느끼는 슬픔도 있습니다.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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