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신교, 더 나아가 종교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 후에 일부의 무신론자들에 의해 종교의 해악을 비판하는 논의들이 많았는데, 최근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에서 ‘광장’의 시위를 주도하는 목사들의 언행에서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나, 많은 분이 분노하는 것은 개신교 목사들이 정치적 의사를 밝히거나 정치 참여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들도 정치적 발언을 할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들의 언어가 과격하고, 폭력적이며, 천박하고,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불법을 선동하며 나아가 성경 정신에 위배되는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예로, 1992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며 루터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말테 교수의 지적인데, 이분은 교회의 윤리 회복을 촉구하였지요. “지금 한국 개신교에는 루터 시대 천주교회와 닮았다.”, 또는 “루터 시대 천주교회 면죄부가 사후세계를 향한 것이었다면 오늘 개신교에서는 현재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히 “목사들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고 있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바 있지요.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아인슈타인은 1930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과학과 종교’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는 인정하였지만 무신론자였지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인정한 그 종교는 ‘신의 창조’와 ‘영생’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발견한 종교였습니다. 그의 무신론적 견해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종교는 망상이며,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대부분은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분은 종교는 전쟁, 종족 학살, 테러리즘 등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고까지 비판하지요.
이런 주장과 탄핵 정국의 광장에서 쏟아낸 어느 목사의 막말을 비교하면 논리적 비약이겠지요. 그러나 그분의 말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고 그 말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테러리즘을 옹호하고 이념이 다르면 같은 국민도 처단해야 한다는 무서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어느 한 ‘목사’의 일탈이라고 인정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반성은 필요한 부분이지요.
위에서 제기한 무신론자들의 종교 비판에 대하여 큰 흐름을 잡아 준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의 사상가>로 선정된 바 있는 조너선 화이트입니다. 그는 세 번에 걸친 TED 강의와 그것을 더 확장한 <바른 마음>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무신론과 종교, 선과 악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을 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거의 기적과도 같이 도덕적 진화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종교의 역할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이기심을 억눌러 주는 역할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최소한 이기심을 활용하되 그것이 집단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과학은 세상의 법칙을 밝힐 수 있지만 세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지요. 세상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랑’ 하기 때문에 생겼다고 믿고 싶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양날의 칼입니다. 잘 쓰면 현세에서의 위로와 치유 그것이 ‘영생’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상처를 입을 뿐만 아니라 가장 무서운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