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

by 염홍철


천재가 단명하다고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불꽃같은 열정과 끊임없는 창작 욕구는 스스로를 소진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가 소모되어 단명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천재 시인들이 요절을 많이 하였지요. 대표적으로 이상은 27세에 요절하였고,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뇌내출혈로 28세의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29세에 일찍 세상을 떠난 기형도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1989년 3월,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29세의 한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뇌졸중이었지요. 그는 최근에 ‘영원한 청년’으로 되살아난 시인 기형도입니다. 2017년에 <기형도 문학관>이 개관되고 그를 기념하는 인문 아카데미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기형도는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였고, 다음 해인 1985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하였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자로 재직하면서 좋은 시를 많이 썼는데 갑자기 요절한 것이지요. 죽자마자 당시 절정의 필력으로 빛났던 평론가 김현의 해설에 의한 유고 시집이 발간되었습니다. 김현은 유고 시집을 낸 그다음 해 사망하여 기형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기형도가 세상을 떠난 지도 36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고 유고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은 아직도 해마다 7~8,000부씩 팔리고, 2024년 기준 94쇄를 인쇄하였으며 2022년 기준 50만 부 이상을 판매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요절한 천재 기형도의 시 가운데 <오래된 서적>을 즐겨 읽습니다.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그러나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검은 페이지’에 열광하여 펼쳐 보고 또 펼쳐 봅니다.


그의 시에는 죽음을 예견한 그의 대표작 <빈집>도 있습니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겨울 안개들아/ ···촛불들아/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라고 쓴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기자가 기형도 시의 특징을 ‘주체의 분열’이라고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이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 번번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기형도는 시대를 앞서갔다는 방증이지요.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불멸의 예술’로 살아 있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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