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늙어가면서 오히려 욕심이 더 생기고 미움이 수그러들지 않으며 고집이 더 세진다고 합니다. 정서적으로도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고독하고 소외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늙음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늙음으로써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게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자들 간에도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키케로는 늙음을 인간의 가장 존엄한 시기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노년이 기회와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이며 이를 통해 젊은 세대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축복의 시간으로 본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늙음은 우리의 마지막 행위가 아닌, 가장 완벽한 상태의 인간의 일부이다”라고 주장한 것이지요. 공자도 논어에서 노인의 지혜와 덕을 중시하였으며 경험이 쌓일수록 깊은 통찰을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공자는 “늙어도 배움을 멈추지 않으면 늙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늙음을 고독과 소외의 시간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시기로 묘사했지요. 현대 사회에서 노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며 점점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따라서 늙음은 죽음에 이르는 연습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낙인이 찍힌 시기라는 심한 말을 한 바 있지요. 당연히 늙음과 죽음을 연결하여 “늙음은 결국 생명이 서서히 쇠퇴하는 것이며 그 끝은 불가피한 죽음이다”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늙음과 죽음에 관해 균형적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노년을 단순히 쇠퇴의 과정이 아니라 내면의 통찰과 통합을 이루는 시기로 볼 수 있으며 노년에 이르러 자기실현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노년은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라 삶의 정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한 칼 융의 견해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는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바라보기 때문에 슬퍼지는데 거꾸로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면 격려해야 할 것, 사랑해야 할 것, 풀어야 할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죽음의 입장에서 삶을 성찰하는 사람은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나이를 들어보니까, 젊었을 때 곁에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잊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듦은 겹겹이 앉은 거친 때가 아니라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