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은 민족의 스승입니다. 그의 학문이나 생각의 깊이는 가늠할 수가 없지요. 다산은 232권의 학술서적을 내었고, 2,500여 수의 시와 산문 등을 저술한 위대한 학자입니다. 특히 그가 낸 <목민심서>는 동시대 사람인 애덤 스미스의 저술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는 점에서 세계적 학자이기도 합니다.
경제학계에서는 다산의 학문관이 잘 계승·발전되었다면 ‘경제학의 메카는 영국이 아니라 한국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할 정도로 다산의 경제이론을 높이 평가하지요. 다산의 경제관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명분과 의리를 중시했던 당시 조선에서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다산은 농업 생산성 제고, 토지제도 개혁, 상공업 발전과 기술 개발 등을 강조했고 백성의 노동과 생산방식을 주목해서 숙련과 기술 연마를 주장하기도 했지요.
애덤 스미스도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의 필요와 전문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이론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크게 다른 점은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했으나, 다산은 사재기나 독과점을 지적하면서 시장의 실패를 예견한 점입니다. 최소한 다산은 경제관과 세계관에서 애덤 스미스 못지않은 혜안과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산의 경제학은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다산은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도 받아들였지만, 시장의 실패를 주장한 케인스 이론도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더 돋보입니다.
요즘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자식들에게 큰 교훈의 메시지를 주지요. 다산이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성무 편역)를 보면 자식들에게 “우리는 폐족(廢族)이다”라는 글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 또는 “폐족이라 벼슬은 못 하지만 성인(聖人)이야 되지 못하겠느냐”라는 말로 자식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지요.
박성무 다산 연구소 이사장에 의하면 다산의 성정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네 살짜리 어린 자식의 죽음을 유배지에서 전해 들은 다산의 애달픈 마음, 흑산도에서 자신보다 더 외롭게 유배 생활을 하는 둘째 형님에 대한 지극한 애착 등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익사회의 속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익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윤리의식이 튼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의 ‘윤리의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다산의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