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면 나는 젖는다'

by 염홍철


우리나라에서는 6월부터 8월까지를 우기라고 하지요. 연중 내리는 비의 약 60%가 이 기간에 내립니다. 비를 생각하니까 대학에 다닐 때 소설가 황순원 교수님으로부터 교양 국어를 배웠는데 그의 단편 중에 <소나기>가 떠오르네요. <소나기>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시골에 사는 소년은 개울가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한 관계였지만, 함께 들판을 걷고 무를 뽑아 먹으며 점차 가까워집니다. 어느 날, 두 아이는 산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수숫단 속에서 비를 피합니다. 비가 그친 후, 소년은 소녀를 업고 도랑을 건너며 더욱 친밀해집니다. 그러나 소녀는 소나기를 맞은 후 병이 깊어지고,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소녀는 죽기 전, 소년과의 추억이 담긴 옷을 그대로 입혀 묻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소년은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짧지만 깊은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에서 소나기라는 상징성을 통해 소년 소녀의 사랑의 절정을 묘사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에 대한 추억은 나 자신의 경험보다도 <소나기>의 영상으로 각인된 인상이 더 또렷합니다. 또 비와 관련해서 50대 초반의 시인 이승희의 글이 있습니다. ‘비를 맞으면 나는 젖는다’로 시작하는 시인의 글은 비가 자신을 적시고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처럼 내려서 나를 먼저 적시고 어느 세상의 한 부분을 아주 조금이라도 적시고 그다음엔 흔적 없이 말라가도 괜찮겠다”로 끝을 맺습니다. 그는 시도 비처럼 쓴다고 했습니다. 비가 내린 자리가 흠뻑 젖어 있었지만 조금씩 말라서 증발하는 것처럼 시도 자신의 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게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자아를 세우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주고, 그리고는 ‘말라서 증발하는 것처럼’ 표표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기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 5월 하순, 첫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을 동시에 생각해 봅니다.

keyword
염홍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60
작가의 이전글사랑은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