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풍요

by 염홍철



어느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이 “섣불리 채우는 공간보다, 비워 두는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생각한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여백의 미 또는 여백의 여유라고 환치할 수 있겠지요. 또 그것은 고독한 사람들이 보는 공간 개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해석은 많은 철학적·문학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지요. 먼저 김광석 시인은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라고 했습니다. 텅 빈 공간 속의 나 그러나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내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간은 ‘고독’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풍요’가 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상가들의 많은 설명이 있지요. 장-폴 사르트르는 ‘무(無)’를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의식의 세계를 인식하면서 생성하는 틈이라고 봤습니다. 즉 인간은 무를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유롭게 자기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라고 설파한 것이겠지요. 노자는 비어 있음을 ‘허(虛)’로 표현하였으며, 이것이야말로 유용함의 본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텅 빈 공간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쓰임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도 많이 알려진 ‘공(空)’의 개념이 있지요. 불교의 공은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공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관계와 가능성의 열림이라는 역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은 무(無)와 허(虛)와 공(空) 일 수도 있지만 자유일 수도 있고 존재일 수도 있으며 가능성의 열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시인은 ‘비어 있음’의 상태를 풍요로움이라 말했습니다. 즉 비어 있으나 가능성으로 꽉 찬 공간이 더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텅 빈 공간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재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텅 빈 것은 진정한 풍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밤에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서 고독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풍요로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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