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서울의 모 개신교 담일 목사직을 은퇴하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은퇴하시기 전부터 구상하여 지금도 ‘그의 백성(His People)’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His)는 하나님을 뜻하지만,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검소(simplicity)의 영문 첫 자를 따온 것입니다. 이분은 “한국 개신교가 왜 사회와 국민에게서 신뢰를 잃고 영향력도 잃었을까요? 교만했고, ‘교회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편법도 마다하지 않고 물질만능주의가 교회에도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 정직, 검소를 모토로 스스로 개혁하자는 운동을 시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진정한 신앙은 삶의 변화로부터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마디로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뼈아픈 대목입니다. 온갖 편법과 물질만능주의가 교회에 침투했다는 것도 그렇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그렇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의 변화’로부터 나타나야 한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위의 목사님 말씀처럼 겸손과 정직과 검소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앙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실천해야 할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은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입니다. 대통령 재임 시 연봉의 90%를 기부했고, 대통령궁 대신 시골 농가에서 아내와 거주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모든 나라, 다른 대통령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요. 대통령의 임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 대통령궁의 사용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실천한 정신만은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권력은 사적 부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난한 게 아니라 욕망이 적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겸손과 검소를 극단적으로 실천한 사람이지요.
겸손은 단순히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입니다. 권력자나 부유한 자가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어려운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는 행위는 말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낮아질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