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해서는 정의가 다양하고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정의나 해답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는 취미를 통해서, 누구는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일상의 크고 작은 일로부터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빈도가 가장 많을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인간관계에서 고통이나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믿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할 때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꼭 배신은 아닐지라도 자신에 대해 상대의 변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들은 해소가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1대 1로 상대방에 대해 그때그때 반응을 한다면 ‘배신’ 일 수도 있고 ‘변심’ 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것을 세상의 이치로 환치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지요. 여기에서 ‘세상의 이치’란 사람의 관계는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그 힘이 약화함에 따라 관계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나한테 호의를 갖던 사람이 내 힘이 약화되니까 배반하거나 나에게 소홀히 한다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꼭 ‘힘’의 관계가 아닐지라도 오랜 관계를 맺다 보면 정이 들어 더 돈독해지기도 하지만, 상대의 단점이 조금씩 발견되어 실망하게 되고 자연히 관계가 소원해지게 됩니다. 이것도 세상의 이치일지인데, 무엇이 그렇게 섭섭하고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까? 가장 중요한 대답은 ‘너도 그러면서’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세상의 이치는 중국의 고사성어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염량세태(炎凉世態)’라고 하지요. 이 뜻은 세상 사람들의 태도는 따뜻할 땐 가까이 오고 차가워지면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부귀할 땐 사람이 몰리고 몰락하면 모두 떠난다는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지속적인 관계는 항상 싫증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도덕 철학자 라 로슈푸코는 “사람들은 새로움보다 진실에 덜 매혹된다”라고 하였지요.
나이가 들면 이러한 것들을 터득하게 됩니다. 바로 지혜가 생기는 것이지요. 어느 학자는 “식물에서 꽃과 잎은 경쟁하지만, 단풍과 나목(裸木)은 경쟁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오래된 나무는 그냥 오롯이 자기 열매만 맺는 것입니다. 꽃과 잎을 청년이라고 한다면, 단풍과 나목은 노년입니다. 나이 듦의 좋은 점은 남하고 견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이해하고 포용하며, 오롯이 자신의 열매 맺기에만 충실하면 행복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