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의 철학'을 이해하자.

by 염홍철


얼마 전 ‘속도가 만들어 내는 발전’과 그것을 비판하는 ‘속도의 둔화’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다음 날에는 ‘두 자아의 충돌’과 ‘두 자아가 가진 장점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공존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어제는 ‘미래는 오늘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상호작용의 결과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았고, 거기에 대해서 저는 ‘세상의 매사에 양면성이 있다’로 답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양면성의 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 이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철학의 전반을 꿰뚫는 핵심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라는 전제 아래, 세상의 근원을 ‘대립의 긴장 속 조화’로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낮과 밤, 생명과 죽음, 선과 악은 서로를 통해 존재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즉 갈등이 곧 조화의 전제라고 본 것입니다.


중국의 도가사상에서는 우주의 원리를 음과 양의 상호작용으로 보았습니다. 음과 양은 절대적인 선악이 아니라 서로를 규정하고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나고 겨울이 있어야 봄의 의미가 생기는 균형과 순환의 철학이 아닐까요?


근대에 와서도 칸트는 가치들이 때때로 충돌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가치의 양극단 속에서도 스스로의 이성으로 ‘보편화 가능한 원칙’을 찾는, 즉 실천 이성을 주장했지요.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전해 내려옵니다. 니체는 가치 충돌을 권력의 의지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절대적 선악 개념을 부정하고, ‘삶은 끊임없는 가치의 재창조’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유명한 말 “하나의 진리만을 믿는 자는 이미 죽은 자다”인 것입니다. 따라서 양면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힘인 것이지요.


이럴진대, 누가 자신의 주장과 자신들이 제시하는 가치가 절대적인 것으로 말하겠습니까? 양면성의 철학을 안다면 모두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가치를 선택해서 다른 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 관계 속에서도 균형을 찾고 그 균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우리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우겨대지 말고, 우리들의 주장에도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의 구조’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여야의 충돌 속에서도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보수가 있으면 진보가 나옵니다. 조화란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끝없는 조율의 과정입니다. 두 개의 가치가 대립하여 우리를 괴롭히지만 세상은 결코 한쪽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양면성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사실 괴로울 게 없지요. 그러나 여기서도 양‘극단’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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