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느 여교수님과 만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과 세대 차이는 나지만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서로가 쉽게 공감을 느끼면서 대화를 이어갔지요. 대화의 내용은 ‘내리사랑’과 이른바 ‘중2병’에 관한 것이었지요. ‘내리사랑’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자신의 부모를 섬기기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하지요. 또한 같은 자식이라도 나이가 적은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은 도덕의 문제라기보다는 본능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다음 세대를 보호하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시간과 정성, 걱정과 희생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방향성입니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면 부모의 가슴이 먼저 철렁 내려앉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감정입니다.
대부분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정성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우선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책의 마음도 들지만, 그것은 ‘받고 주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지요.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랑은 내려가되 책임과 보답은 올라가야 공동체가 유지되듯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나 자식은 부모에 대한 책임과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기독교 전통에서도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은총’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막내에게 마음이 더 가는 현상은 더 약하고 더 미숙하고 더 보호할 필요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이 자연스럽게 기울게 되지요. 따라서 사랑은 공평하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으로 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교수님과 부모와 자식 관계를 얘기하면서 당연히 ‘중2병’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중2병’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명명한 것입니다. 사실은 사춘기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생물학적으로 보면 사춘기의 절정은 대략 만 13~15세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에 중2가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춘기는 정체성 혼란, 권위에 대한 저항, 감정 기복, 독립 욕구와 불안의 공존 등이 특징이지요. 사춘기에는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여아는 조금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고, 남아는 늦게 시작하여 길게 지속합니다. 여아 사춘기는 조용하지만 예민하고 남아 사춘기는 늦지만 폭발적입니다.
한국의 ‘중2병’은 우리 아이들이 유독 이상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특별히 붙인 이름입니다. 가장 불안정한 나이인데 사회에서는 조용히 있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춘기는 병이 아니라 아이에게 통과해야 할 혼란의 구간입니다. 그 여교수님과 저는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에서, 아이들은 ‘예’, ‘아니요’, ‘좋아’, ‘싫어’ 같은 단답형이 주된 언어라는 데에 공감했고,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으나 우리는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베풀면서도 부모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관심과 공경의 표현을 잘 못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쓴웃음으로 대화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