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도덕적으로 사는 삶과 부와 쾌락을 누리는 삶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선하게 살고 싶지만 동시에 안정과 성취,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이 욕망 자체가 아니라, 오래된 도덕 담론이 이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토드 메이는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 ‘품위 있는 삶’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도덕은 욕망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는 금욕의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을 가진 채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경멸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방식이 도덕입니다. 돈을 벌고, 즐거움을 누리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타인을 도구로 삶거나, 자신의 선택을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우리는 부와 쾌락과 함께 품위까지 잃게 됩니다.
고대 철학자 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와 쾌락은 선 그 자체는 아니지만 잘 사용하면 좋은 삶의 조건이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따라서 도덕과 삶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도덕은 쾌락의 적이 아니라 쾌락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고 지속 가능한 기쁨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합니다.
근대에 와서도 애덤 스미스는 그의 유명한 <도덕 감정론>에서 부의 추구는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공감 능력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타인을 인정하고 사회적 규범이 작동된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 빅터 프랑클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쾌락이나 권력보다 ‘의미’를 추구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덕이나 쾌락은 의미의 하위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이렇게 도덕은 삶을 가난하게 만드는 규범이 아니라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선입니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옳으므로 가난해지고 있는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풍요로워지고 있는가?’인 것이고, 품위는 바로 그 경계에서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