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으로 알려진 파스칼 브뤼크네르(Pascal Bruckner)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인생의 시계를 늦추는 방법은 ‘욕망의 역동성’ 안에 머무는 것이라 했습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포기하라는 말에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흘려보냈을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이 듦’의 새로운 철학과 함께 반짝이는 기회로 삼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브뤼크네르는 인간이 흔히 의미는 ‘극적인 사건, 성취, 변화 속에만 있다’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삶의 대부분은 비범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반복되는 ‘루틴’은 삶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을 하는 행위는 겉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것은 삶에 형태와 리듬을 부여하는 구조물 같은 것입니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인간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하고 공허하며 방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브뤼크네르는 루틴은 감옥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뼈대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인간에게는 좋고 보람 있는 일도 많지만, 상실과 절망을 경험하기도 하고 질병과 나이 듦의 불안 같은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때 인간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나 결단이 아니라 아침을 먹는 일, 세수를 하는 일, 출근하여 하루의 일을 수행하는 일 같은 사소한 반복적 행위입니다. 이렇게 루틴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삶을 계속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 조건을 제공합니다.
브뤼크네르는 현대인이 늘 새로워야 하고, 항상 특별해야 하며, 지루함에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만성적 불만과 피로를 낳게 합니다. 그러니까 루틴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패배가 아니라 성숙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지요.
저를 포함한 많은 분이 변화 없이 이어지는 일상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고 보람과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의기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브뤼크네르의 주장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오늘도 우리가 살아 있음을 받아들이는 조용한 의지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루틴은 삶을 드라마로 만들지는 않지만,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구원이기 때문에 시시한 하루를 살아내는 용기가 얼마나 깊은 인간적 가치를 되묻는 철학적 성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