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by 염홍철


오늘도 어제에 이어,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주장을 중심으로 몇 가지 더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파스칼 브뤼크네르를 가리켜 “인생의 가을에 새봄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황혼의 철학을 정리하였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가 쓴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의 부제는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 듦의 새로운 태도”라고 명명되었지요.


일단 브뤼크네르는 인간은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비판하고 있지요. 인간은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세대 안에서, 직업과 역할 안에서 어떤 ‘자리’를 부여받고 그 자리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정체성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지요. 흔히들 현대인은 고정된 자리를 싫어하고, 규정된 역할을 억압으로 여기며, “나는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새로운 불안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리를 거부한다면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존재가 됩니다.


자리를 위계나 특권이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자리는 책임의 공간입니다. 브뤼크네르는 자리는 우월함의 증거가 아니라 책임을 맡았다는 표시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제한하는 위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나이 듦은 자리의 변화이지 퇴장은 아닙니다. 그래서 브뤼크네르는 노인을 무대에서 밀려나는 시기가 아니라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전면에서 배경으로, 자리의 성격이 바뀌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소멸이 아니라 역할의 전환인 것이지요.


현직에 있는 후배들을 만나면 그들은 흔히 “퇴임을 하면 좀 쉬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 달만 쉬어 봐라. 더 이상 쉬는 것이 지루하고 무엇이 자유인지 혼동하게 될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고 타인과 공간을 나누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자리가 있어야 일을 하고, 일을 해야 육체와 정신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퇴화하지 않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리가 있어야 하고 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지요.


이 글을 읽고 어느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 모르나? 일할 자리가 없어” 그러면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찾아봐. 마음을 비우면 주위에 얼마든지 자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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