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확신보다 신중함을 가르친다.

by 염홍철


지난 금요일 오전, 대전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그날 저는, 저에게 글을 보내는 분들에게 답글로 안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세계의 상태를 말해준다.”라고 정의하면서, “오늘 하루 안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보내심이 어떠시냐?”라고 주문했습니다. 저 역시 지난 금요일 내내 안개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안개’하면, 떠오르는 것이 옛날에 정훈희 가수가 불렀던 <안개>라는 노래이고, 영국에 안개가 많이 낀다는 것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모든 것이 또렷하지 않은 세계에서 발달한 거리 두기의 미학이 특징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안개가 많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영국인들은 명확함보다는 모호함을 견디는 태도를 가졌다고 하지요.


안개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감정 상태에 영향을 주는 매우 다양한 상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안개는 시야를 가린다는 점에서 인간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판단이 유보된 상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길은 있으나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이 안개입니다. 안개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상태이지요. 밤과 낮 사이 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흐리며, 선악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 즉 무언가를 감추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안개를 생각하면서, 세상과 인생도 결부시켜 봤습니다. 세상은 원래 불확실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늘 선명함을 진실이라 착각하지만, 삶 대부분은 흐릿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안갯속에서 사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라고 확정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 불확정성 앞에서 인간은 속도를 잃고, 방향을 다시 묻게 됩니다. 안개는 길을 지우지 않습니다. 단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개는 실패나 혼란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성급히 규정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불투명한 상태, 그 자체를 견디는 태도가 역설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아닐까요?


안개는 노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장면은 또렷한데, 어떤 이름과 날짜는 흐릿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쇠퇴나 노화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방식이 바뀌는지도 모릅니다. 안갯속에서는 개별 사물의 윤곽은 흐려지지만, 대신 전체의 기운과 방향은 알게 됩니다. 노년의 기억은 세부를 잃는 대신, 삶의 결은 납깁니다.


지난 금요일 대전은 안갯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으니까 너무 규정지으려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배고프다고 하여 밥상을 차려주니까 반찬 타박을 합니다. 안개는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시간의 다른 얼굴입니다. 그래서 그날 안개를 보면서 잠시 침묵하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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