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탓? 내 탓이오.

by 염홍철


지화자, 주전자, 고사리, 아우성, 재건축,

상한가, 오징어···

모임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단어들을 들으며 한때의 풍경을 떠올릴 것입니다.

연말연초 송년회와 신년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인사말이자 건배사였습니다.


지화자는 ‘지금부터 화합하자’,

주전자는 ‘주인의식을 갖고 전문성을 갖추고 자신 있게 살자’,

고사리는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이해합니다’,

아우성은 ‘아름다운 우리의 성공을 위하여’,

재건축은 ‘재밌고 건강하게 축복하며 살자’,

오징어는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라는 뜻이지요.

모두가 서로를 북돋우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말들이었습니다.


요즘 모임에서는

조금 다른 건배사들이 더 자주 들립니다.


“각자도생 말고, 함께 생존하자”

“오늘은 웃고, 내일은 버티자”

“잘 버텼다, 우리”

“무사히 여기까지 온 우리에게”


지금은, 성과보다는 과정,

성공보다는 버팀,

의욕보다는 회복을 건배하는 말들입니다.

치열한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답게

요즘의 건배사는 한층 낮아졌고,

그래서 더 진솔해졌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 건배사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누구 탓?”

그러면 다 함께

“내 탓이오.”


라틴어 ‘메아 쿨파(Mea Culpa)’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못은 먼저 돌아보고,

잘된 일은 주변 덕으로 돌리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요즘 같은 시대에 더 필요한 품격 아닐까요.


1월의 한복판,

설날까지 이어질 여러 모임에서

복잡한 말 대신

이렇게 건배해 보시지요.


“누구 탓?”

“내 탓이오.”

작가의 이전글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서리와 눈 덮인 소나무를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