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학벌이 경쟁력이었습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곧 어느 조직에 들어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고 일종의 통행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특히 60대를 넘어서면 그 통행증의 효력은 눈에 띄게 약해집니다. 퇴직과 함께 직함이 사라지고, 조직이라는 무대에서 물러나면 학벌과 사회적 지위는 더 이상 사람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노년의 일상에서는 “어디를 나왔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 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노년을 ‘평준화의 시기’로 보기도 합니다. 직업 역할이 사라지면 위계가 느슨해지고, 연금과 복지 같은 제도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면서 격차를 완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노년의 인간관계에서는 교수와 회사원, 공무원과 자영업자가 비교적 비슷한 위치에서 만나게 됩니다. 산책로와 병원 대기실, 동네 경로당, 동창회 등에서는 과거의 직함이 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불평등의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벌과 지위가 만들어낸 결과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평생의 소득 경로, 자산 축적, 주거 환경, 건강 상태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큰 차이를 만듭니다. 경쟁의 무대가 바뀌었을 뿐, 경쟁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노년의 불평등은 성과가 아니라 축적의 문제로 모습을 바꾸는 것뿐입니다. 노년에는 오히려 격차가 더 커진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직함의 위세가 약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재력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이 가능하지요. 돈은 노년에도 절대 평준화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영향력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젊을 때 돈은 지위와 결합해 직접적인 권력이 되지만, 노년의 돈은 의료 접근성, 돌봄의 질, 주거의 안정성, 자녀와 손주를 도울 수 있는 여력 같은 간접적 영향력으로 전환됩니다. 눈에 보이는 위세는 줄어들 수 있지만, 삶의 선택지를 넓히는 힘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지요.
결국 노년은 평등의 시간이기보다, 서열의 문법이 바뀌는 시간입니다. 학벌과 직함이 만든 수직적 질서는 낮아지지만, 자산과 건강, 관계가 만드는 수평적 차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가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명함이 아니라, 지금의 몸과 마음,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의 학벌이나 직위, 재력보다는 현재 그 사람의 ‘인품’이 관계집단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