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젊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자주 쓰지 않는 ‘밀도의 힘’에 대해 말하여 약간 놀랐습니다. 밀도의 힘이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응축해 남긴 것에서 생기는 힘’을 말합니다. 즉, 속도가 아니라 깊이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밀도의 힘이란 청년의 언어가 아니라 노년의 언어라는 점에서 의아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정치인이 쓴 밀도의 힘이라는 용어는 도시발전과 결부시켰으나 인문학적으로 본다면 노년의 언어가 되지요.
노인의 언어가 젊은 정치인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 출판기념회에 다녀와서 이 화두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시간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당시는 그 시간 위를 달리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채우고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경험을 늘리고, 성취를 해내고, 관계망을 확장하는 데 에너지를 쓴 것이지요. 당연히 이것은 밀도의 힘과 배치되지요. 그러나 노년으로 접어들수록 시간은 더 이상 넓지 않습니다. 대신 깊어지지요. 남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응축되어 있는가가 삶의 무게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로소 밀도의 힘이 드러나지요. 하루를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보다, 그 하루 안에서 얼마나 사유했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말을 줄이고, 걸음을 늦추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게 됩니다. 침묵 속에서 생각은 더 깊어지고, 기억은 정리되며, 삶은 비로소 하나의 의미로 응축됩니다. 노년의 시간은 소비할 대상이 아니라 숙성될 대상이기 때문에 밀도의 힘을 갖는 시간입니다.
사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의 생각은 빠르고 많지만, 노년의 생각은 느리고 무겁습니다. 그 무게는 정보의 양에서 오지 않습니다. 정보의 양이라고만 한다면, 젊은 시절의 양이 훨씬 더 무겁겠지요. 그러나 노년의 시간은 살아오며 겪은 선택과 후회, 관계와 상실이 한 점으로 모여 만들어낸 밀도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노년의 한마디는 종종 긴 설명보다 깊고, 한 번의 침묵은 수많은 주장보다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노년이란 줄어드는 시기가 아니라 응축되는 시기이겠지요. 시간은 짧아지지만, 사유는 깊어지고, 말은 적어지지만, 의미는 선명해집니다. 밀도의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태어납니다. 더 많이 말하지 않아도, 더 빨리 살지 않아도, 삶이 자신을 장려하는 순간입니다. 밀도의 힘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무엇을 더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밀도 있게 할 것인가를 실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