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과 공·사간에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는 인기나 여론보다는 명분과 대의를 선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직설적이어서 때로는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종종 주변을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산된 행위가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성격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언행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으나 말과 소신을 바꾸지 않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그때 같이 고초를 겪은 사람 중에 한두 명은 저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후배이며 같은 연구소에서 근무도 한 바 있지요. 만나면 항상 그들의 안부를 물었고, 옅은 한숨과 함께 침묵이 이어졌으나 무언의 연대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또 하나의 회고는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통합 민주당 경선 후보로 손학규, 정동명과 함께 이해찬 후보가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해찬 후보의 선대 위원장을 맡았는데, 경선 결과 이해찬 후보는 3등을 해서 탈락했지요. 그러나 제가 담당했던 대전·충남에서는 1등을 했지요. 경선이 끝난 뒤에 만났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는 정치를 떠난 후에도 침묵하지 않았고, 권력은 내려놓았지만, 책임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정치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평가하듯이 ‘모두에게 사랑받지는 못했으나 자신을 속이지는 않은’, 노선이 분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내뱉는 직설적인 언어는 논쟁을 제기했고, 박수보다는 대의를 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베트남이라는 외국에서 작고한 것도 일정한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공과를 떠나, 오늘 우리는 국가를 위해 항상 대의를 택했던 한 정치인의 올곧은 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