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 구호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는데, 오래도록 그 말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그것을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 게임 규칙이나 시장(市場)은 정치에 의해 규정되고 결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정치가 사회 전반을 과잉 점유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과포화’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요즘 세상은 온통 정치로만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경제도, 교육도, 문화도 심지어 이웃 간의 대화마저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에서도 정치인만 보이고 교육자나 예술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지지요. 뉴스를 보면 정책보다는 진영 간 싸움이 더 많고, 비전보다는 유불리가 우선합니다. 정치는 분명 중요합니다. 정치가 방향을 정하면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요하다고 해서 삶의 전부가 정치화되어서는 안 되지요. 일찍이 정치 철학자 로버트 탈리스(Robert B. Talisse)는 정치를 ‘제자리에’ 두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치의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정치가 과도하게 부각되면, 오히려 정치의 품격은 낮아지고 천박한 힘만 커지지요. 시민은 정책의 주체나 행위자가 아니라 관전자로 머무르기 때문에 사실상 시민의 의사가 제대로 부각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정치인들은 ‘시민의 뜻’이라고 둘러대는데, 그것은 시민의 의사를 계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분이 말한 것처럼, 선거는 경마 중계처럼 소비되고 맙니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냉소가 증가하지요. ‘정치(인)는 다 똑같다.’라는 말이 늘어날수록 민주주의 토대는 약해집니다. 정치 혐오는 참여를 줄이고, 참여의 감소는 다시 정치의 질을 떨어트리는 악순환을 만들지요. 그래서 정치 참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사회관계 전체를 삼키지 않도록 경계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 참여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가 삶의 모든 공간을 점령하는 현상입니다. 친구를 만나도, 책을 읽어도, 공연을 보아도 결국 진영의 언어로 귀결된다면 사회는 숨 쉴 틈을 잃어버리지요. 정치가 사회를 이끌어가야지, 사회를 삼켜서는 안 됩니다.
물론 시민이 정치를 경멸하고 멀어질수록 정치는 더 소수 엘리트의 게임이 되고, 그 결과 다시 혐오가 커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따라서 ‘정치 혐오’나 ‘정치 불신’이 커지는 현상과 정치가 사회 전반을 과잉 점유하는 것을 구분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콜린 헤이(Colin Hay) 교수는 정치 혐오를 단순히 시민의 무관심 탓으로 보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결합해 정치가 ‘할 수 있는 것’이 축소되고, 그 결과 시민이 정치를 더 싫어지게 됐다는 식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 경멸과 정치 과잉이 병행하기도 하고, 서로를 악화시키기도 하는데 정치가 과잉 노출되면 사회가 거칠어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경제와 문화, 교육도 각자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 중요하지만, ‘정치만’이 중요하게 인정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시민은 정치 위에 있다는 그 자부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