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배워라

by 염홍철



이번 주 목요일 대전 지천명 아카데미에서 인문학 강좌가 있어, 이번 주는 인문학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는 비상(非常)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였지요. 국내외를 불문하고 경제는 흔들리고, 사회적 격차는 고착되며,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인문학에서 배워라.’는 조언은 다소 한가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도 않고, 금리를 낮춰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인문학이 필요하고 인문학에서 배우라고 할까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재를 ‘액체 근대’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안정된 기반이 사라진 시대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불안이 구조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위기 그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할 언어를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은 바로 그 언어를 제공합니다. 인문학을 쉽게 문(文)·사(史)·철(哲)이라고 한다면, 문학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며, 역사는 위기가 반복됐음을 보여주며, 철학은 질문을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는 빅터 프랑클은 인간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경제적 해법이 아니라 존재론적 해법입니다. 인문학은 현실을 바꾸기 전에,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꿉니다. 관점이 바뀌면 고통의 밀도도 달라지지요.


독일에 있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은 성과사회에서 인간이 자신을 착취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착취와 압박 속에서 우리는 방향보다 속도를 중시합니다. 인문학은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지를 묻게 합니다.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삶은 자동운전에서 벗어납니다.


인문학은 위기를 없애지 않지만, 혼란은 줄이지요. 격차를 단번에 해결하지 못하지만, 인간을 도구로만 보는 시선을 교정합니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정보보다 더 깊은 질문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비상이나 비정상은 시대의 조건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유를 포기하는 순간, 비상은 혼돈으로, 비정상은 관행으로 바뀝니다. 인문학은 정답을 주지 않지만 대신 흔들리지 않을 중심을 묻습니다.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의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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