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과 책임 사이에서

by 염홍철


저는 글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글을 쓰면 친지들과 공유하고,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도 전달되지요. 평생 공인의 입장으로 살아왔기에 글을 쓸 때 어디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입장 때문에 곤혹스러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어있기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해석은 정반대로 갈리고, 사람들은 상대 의견을 이해하기보다 진영의 논리를 먼저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중립은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 오해받기 쉬운 태도가 되어버립니다.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기 위해 중립을 강조하며, 또한 그것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공정해 보입니다. 특히 정치나 사회적 논쟁이 거칠어질수록 중립은 성숙한 시민의 덕목처럼 인정되고, 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의 갈등 속에서 중립은 생각보다 복잡한 의미를 가집니다. 한쪽에서는 중립을 ‘합리적 균형’이라고 평가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책임 회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은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의심받습니다. 저는 극우세력의 등장이나 극좌세력의 주장에 대해서 똑같이 비판합니다. 저는 양극단 세력에 대해서 균형 있는 비판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때 양측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것이지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 데스몬드 투투는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을 선택하면 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중립이 항상 공정한 태도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갈등에서 즉각적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사회가 극단으로 갈라질수록 감정과 집단의 논리에 휩쓸린 판단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서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입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천적 지혜’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히 중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숙고를 거쳐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지혜란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는 태도가 아니라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의 자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맹목적으로 진영을 따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든 갈등 앞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판단을 미루는 것도 책임 있는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제도이지만, 동시에 시민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나누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립’이라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정성과 책임’ 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논리에 쉽게 휩쓸리지 않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순간에는 침묵하지 않는 태도 말입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늘 ‘가운데 서 있는’ (중립) 사람이 아니라 가운데에서 충분히 생각한 뒤 순간에는 한 걸음 내디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중립은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책임 있는 판단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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