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적 사고의 시대

by 염홍철


요즘 사람들을 만나 보면, 의외로 타인을 쉽게 의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숨은 의도가 있다고 해석하고, 설명되지 않는 불안 앞에서 방어부터 작동합니다. 의학적으로 편집증적 사고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나, 그 전문적인 입장을 떠나서 일상에서 느끼는 ‘편집증적 사고’는 분명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묘한 감정이 결합해 있습니다. 자부심과 열등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기지는 않으면서, 세상이 나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늘 의문이 남지요. 혹시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뒤에서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입니다. 이러한 개인 차원만이 아니라, 북한에서는 편집증적 성격이 집단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자부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요. 한편으로는 ‘주체사상’ 등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있는 자기중심적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의 사람은 지속적으로 설명을 요구합니다. 설명이 사라지면 불안이 커지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설명의 방향입니다. 복잡한 구조와 제도를 이해하기보다, 악의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그 순간 불안은 잠시 가라앉지만, 대신 신뢰가 무너집니다.


편집증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증상에 가깝습니다. 노력과 결과의 연결이 약해지고, 공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수록 사람들은 타인을 의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정치의 실패는 음모로 취급하고, 상대의 성과는 조작으로 의심하게 되며, 대인관계에서의 실패는 배신으로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붕괴하는 것은 그동안 맺은 ‘관계’이겠지요.


편집의 반대말은 ‘순진함’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구조’이지요. 사람에게 의심을 멈추라고 요구하기보다, 사회가 먼저 설명 가능하고 예측할 수 있는 질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신뢰는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허락하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조건이 아닐까요? 그래서 편집증적 사고의 시대란 사람들이 유난히 예민해진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믿기 어려워진 시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불신은 그 누군가의 성격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설명할 수 있고,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지를 묻는 말입니다. 이외로 우리 사회에 편집증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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