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톨레의 주장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

by 염홍철



어제 <아침단상>에 썼던 영성가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인간의 고통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통찰은 종교를 넘어선 보편성을 지니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곧 현재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분도 아니고, 미래의 약속으로만 존재하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 속에서 인간과 만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에 계시는데, 인간은 지금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대 신앙 역시 이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신앙은 미래 지향적 욕망과 결합하지요. 더 나은 삶, 더 큰 축복,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기도는 현재에 만남이라기보다 미래를 바꾸기 위한 요청이 되고, 신앙은 관계라기보다 결과를 향한 투자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결국 불안을 강화하게 되지요. 미래를 붙잡으려 할수록 현재는 비어 가고,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점점 추상화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보다, 머릿속 개념으로만 신앙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의 가르침은 더욱 확실합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책임한 낙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삶을 저당 잡히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신앙은 미래를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힘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제도 얘기했지만, 오늘날 불안과 우울의 확산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를 상실한 삶’의 사회적 증상입니다.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성취하지만, 점점 더 삶을 느끼지 못합니다. 신앙조차 이 흐름에 편승할 때, 종교는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부담이 되지요. 결국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잡한 교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입니다.


그래서 에크하르트 톨레의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풀어보면 단순히 '맞다/틀리다'를 넘어 어디까지는 연결되고 어디까지는 갈라지는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현재에 계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톨레의 주장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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