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by 염홍철


어제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 등과 함께 종교를 떠나 축제로 섬기는 날이지요. 그런데 부활절이 되면 우리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립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난 예수의 사건,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간 그 극적인 전환 말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을 단지 2천 년 전의 기적으로만 기억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회고에 머무를 뿐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현재의 질문입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의 정점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 관계의 붕괴와 상실의 경험이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고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끝이라고 믿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부활 신앙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용기, 절망 속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 그것이 곧 부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빠름’과 ‘경쟁’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성취는 속도로 측정되고, 인간의 가치는 결과로 평가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은 점점 무뎌지고, 타인의 고통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부활의 메시지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지요. ‘살아나라. 그리고 살게 하라.’는 이 짧은 권고는 단순한 종교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요구입니다. 미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일, 포기 대신 다시 시도하는 태도, 분열 속에서 화해를 선택하는 용기. 이러한 선택들이 쌓일 때, 부활은 더 이상 교리 속 개념이 아니라 종교를 떠나 현실 속에서 살아 작용하는 힘이지요.


신앙이 말에 머무를 때,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선택될 때, 세상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상처 입은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부활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어제 부활절을 맞아 기도하면서,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저 버티고 있는가.’라고 자문했습니다.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닫힘을 넘어 열림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부활이며, 이것이 또한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정신은 각자의 종교를 넘어 보편적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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