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범죄를 생각할 때 흔히 감옥을 떠올립니다. 살인하고 도적질을 한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조금만 더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단순한 구분이 얼마나 부정확한 착각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회에는 감옥에 가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악’이 존재합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능력을 인정받으며, 겉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짓말과 모략, 이간과 배신이 일상처럼 반복되기도 합니다. 법을 교묘히 피해 가며 타인을 이용하고, 조직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행위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성과를 인정받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며, 사회적으로 존경까지 받습니다. 반면, 눈에 보이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즉각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사회에서 배제됩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모순’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래서 현대사회의 가장 위험한 범죄는 거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사무실 안에서 회의실 안에서 그리고 조직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거짓 보고, 의도적 정보 왜곡,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모략, 타인을 희생시키며 자신의 성과를 만드는 행위들, 이 모든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범죄학자 에드윈 서덜랜드는 오래전에 이런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직업 활동 속에서 저지르는 범죄’라는 것이고, 이것을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잘 보이지 않기에 크게 문제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진짜 악은 어디에 있는가. 감옥 안에 있는가, 아니면 성공의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악은 반드시 거칠고 노골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가장 세련된 얼굴을 하고, 가장 달콤한 언어로 우리 곁에 머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준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얼마나 정직한가.’, ‘얼마나 타인을 수단이 아닌 존재로 대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감옥은 사회가 만든 경계선이지만, 진짜 경계선은 어쩌면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