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처럼 보이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미 새로운 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현대 사회를 ‘테크노퓨달리즘(technofeudalism)’, 즉 기술봉건주의라고 부릅니다. (바루파키스, <테크노퓨달리즘> 참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세상의 권력은 토지나 공장이 아니라 ‘플랫폼과 데이터’를 가진 거대 기술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중세 봉건사회에서 영주는 땅을 소유했고, 농민은 그 땅에서 일하며 지대를 바쳤습니다. 바루파키스는 오늘날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거대 플랫폼은 디지털 공간을 장악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검색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며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행동과 관심, 감정까지 데이터가 되어 플랫폼의 자원이 됩니다. 어느새 우리는 디지털 영토 위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농노’가 된 셈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정신이 쉽게 흔들립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주의를 끊임없이 붙잡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지를 은밀하게 유도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우리의 마음은 그 속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입니다.
영국의 심리치료사 필립파 페리는 그 해답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키우는 것’에서 찾습니다. (필립파 페리, <온건한 정신으로 사는 법> 참조) 그는 인간에게는 경험하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페리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감정은 약함이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감정의 주인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자유는 여전히 ‘마음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플랫폼이 우리의 시간을 차지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내면까지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자신을 바라보는 조용한 관찰자가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자신을 바라보는 작은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즉, 인문학적 성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시대에도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