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힐> 1999년 7월 3일 개봉
글 내용에 영화 스포가 있습니다:)
대부분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그렇듯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한 덕질을 했다. 그런데 뭔가 좀 귀찮음도 있어서 학생 때는 직접 보러 가기보다는 굿즈 사고, 투표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고,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열심히 덕질을 하는 편이었는데 덕질을 위한 콘텐츠 중 자주 소비했던 것이 팬픽이었다. 뭔가 그 나이대의 유치함이 묻어 있는 팬픽도 있었고 지금 읽어도 굉장할 것 같은 필력이 뛰어난 팬픽들도 있었는데 상당수의 팬픽이 나의 최애 멤버가 남자 친구라거나, 남편이라거나 하는 상황의 것들이었다.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생각만 해도 얼마나 재미있는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최애와 하는 비밀 연애와 비밀 결혼은 텍스트로만 봐도 짜릿한 즐거움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멤버랑 삼각관계도 흔했다. 정말 밤새 읽고 친구랑 수다 떨던 기억이 선한데 나이 들고 나서야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연예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늘 빛나지만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나의 최애가 세상에 둘도 없을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일을 하다가 최애를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내가 연예계와 관련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큰 의미 없이 일하다가 최애를 만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한때는 최애 배우의 기획사에 나랑 뭔가를 협업해 보자는 메일을 보낼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눈앞의 일들에 치여 상상으로 끝났지만. 지금은 만나도 예전 같은 팬심은 없어서 그냥 예전에 팬이었다고 말하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팬이었을 때의 그 생각들은 남아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연히 내가 일하는 서점에 유명한 배우가 들른 것을 계기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이다.
윌리엄 대커(휴 그랜트)는 노팅 힐에서 여행 전문 서점을 운영한다. 조금 괴짜인 룸메이트와 가족, 친구들과 하루하루가 조용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서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 안나 스콧트(줄리아 로버츠)가 온다. 그녀를 보고 반하지만 더 이상 할 이야기나 할 일이 없어 손님으로 잘 대우를 하고 보낸다. 그런다 우연히 또 만나게 되고 안나를 도와주면서 천천히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안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찬사를 받는 아주 유명한 배우지만 평범한 사랑을 꿈꾼다. 윌리엄은 안나를 볼 때마다 끌리지만 안나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하고 안나의 특별함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안나는 용기를 내 자신은 "사랑해 달라며 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자일 뿐이에요.'라는 말을 하며 고백을 한다. 그러나 윌리엄은 고민을 하고, 오해도 하며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연 기자회견에 가서 사랑을 고백한다.
사실상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연애를 해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사실 근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연애를 하기까지의 과정보다 사귀고 난 다음에 이런 데이트도 해 보고 저런 데이트도 해 보고 그러다가 사람들한테 걸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가 자신의 사랑임을 깨닫고 찾아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 준다. 기자회견 장면에서 윌리엄이 힘들게 들어가서 기자인 것처럼 질문을 할 때, 그리고 안나가 윌리엄을 알아채고 이곳에 영원히 머물 거라고 대답을 하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지르게 되는 장면이었다. 플래시가 막 터지면서 기자들이 윌리엄을 바라볼 때 뭔가 쾌감이 느껴졌다. 식상하지 않게 결말을 잘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휴 그랜트가 너무 유명한 배우라 처음 봤을 때는 잘 몰입이 안 됐다. 그냥 동네 서점 주인이라기엔 너무 멋있는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의 ost와 느낌이 좋아 계속 보다 보니 이젠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영화는 she라는 ost로도 유명한데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과 안나가 푸른 정원의 하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윌리엄은 앉아서 책을 읽고 있고 안나는 임신을 한 상태로 윌리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조용하고 평온하게 풀어낸 것 같기도 하다. 이 내용만으로도 재미 있었지만 뭔가 그후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