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동 야경 명소
팍팍한 취직 준비를 끝내니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휴가일수에 허덕이고 비싼 항공권 가격에 질린 당신. 어릴 때는 부모님 손 잡고 해 질 녘 동네 산책만 해도 근사한 소풍이었는데 이제는 가족 여행을 마음먹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지지 않았나요. 키가 쑥 자라고 나니 환갑 기념 여행이니 하는 거창한 명분을 붙이고 나서야 부모님과 함께 길을 나설 수 있게 되었잖아요.
밥벌이를 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난 후 '아빠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어느 먼 나라 풍경처럼 낯섭니다. 우리를 그 먼 풍경 속으로 보내주는 건 값비싼 티켓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먼저 내미는 손길이겠지요. 저도 작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대동 하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대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경 명소인 하늘공원은 대전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하늘공원을 받치고 있는 대동 벽화마을은 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에서 시작하여 많은 예술가들의 노력 끝에 지금의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대요.
골목을 따라 오르막길과 계단을 오르다 보면 대전의 가장 높은 마을인 대동 벽화마을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다정다감한 담벼락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이 밤하늘에 닿아가는 마음을 더욱 두근거리게 합니다. 식구들이 모여 저녁밥을 짓고 있는지 맞붙은 창문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광경도 이곳만의 특별한 야경이지요.
"아버지도 엄마랑 연애할 때 이렇게 으슥한 곳으로 찾아오셨어요?" 하늘공원의 명물 중 하나인 '연애바위'를 지나며 실없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선남선녀가 모이는 '연애바위' 하나쯤은 다 있었다는 아버지의 말씀 끝에 던진 질문이었지요. "엄마는 어두운 데를 싫어해서 못 왔지." 허무한 대답에 부녀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요즘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말끔한 양복 신사로 삼십여 년 직장생활을 이어오셨어요. 직장에서 두 해를 겨우 넘긴 나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아슬한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한 곳에서 버틸 수 있으셨을까. 언덕에 앉아 먼 불빛을 내려다보며 아버지께서 쌓아 올린 시간의 산을 생각합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산과 강, 건물과 도로가 어떻게 밤 풍경을 수놓는지 천천히 바라보았어요. 저 부드러운 능선은 보문산, 훤칠한 형제 건물은 대전역 뒤편의 한국철도공사,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은 정부대전청사... 별자리를 짚어내는 손길로 내가 사는 도시의 별들을 하나하나 가리켜 봅니다.
제가 하늘공원 야경에 푹 빠져있는 동안 아버지는 공원 한쪽 정자에서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저도 불쑥 끼어들어 세 모녀의 살아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요. 전쟁통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억척같이 살며 아이들을 기르셨다는 어머님. 긴 타향 생활 끝에 몇십 년 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어릴 적 뛰놀던 곳을 찾은 막내딸은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손을 다시 한번 꼬옥 쥡니다. 삶의 풍경을 펼쳐놓고 세상의 지혜를 제게 물려주고프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어느 저녁의 짧은 여행을 마칩니다.
<여행 정보>
o 주소 : 대전 동구 동대전로110번길 182
o 가까운 버스 정류장 : 우송대입구 정류장 / 605번, 608번
o 가까운 주차장 : 대동 공영주차장(대전광역시 동구 대동 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