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가수원동 구립도서관
장서 보유량이 많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큰 규모의 도서관들이 많이 있지만, 퇴근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가까운 도서관은 그 소중함을 다른 곳에 비할 수 없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동네 도서관 이야기는 대전 서구의 가수원도서관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의 집 근처에 있는 익숙한 ‘그 도서관’입니다.
가수원 도서관은 도솔산 오르는 길목을 옆에 끼고 있습니다. 열람실에서 공부하던 중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푸른 여름 산의 정취에 빠져 한참 거닐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버스를 타러 내려오면 가수원시장이 여러 맛집들로 배고픈 수험생을 유혹하고는 했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시험공부에 지쳐갈 때마다 13만 여 권의 장서가 가지런히 꽂혀있는 서가를 거닐며 잠시 숨을 돌리고는 했어요. 수험서 사이에서 비좁게 갇혀있다가 수많은 책들이 넘실대는 바닷가에 풍덩 뛰어들어 자유로워지는 기분. 내가 무엇을 원하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서가와 서가 사이에 있는 그 공간이었지요.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검색하고 번호를 따라 구석구석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도서관의 매력에 좀 더 푹 빠져보고 싶다면 낯선 도시를 구경하듯 서가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100번부터 900번까지 이어지는 서가를 한 줄씩 굽이굽이 따라가면 "너 내가 궁금하지 않니?" 하며 고개를 빼꼼 내미는 책이 하나씩 있거든요.
관심사만을 파고들어가자면 한국문학을 다루는 810번대 서가나 여행도서가 꽂혀있는 980번대 서가만 둘러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면 낯선 도시로 떠나보는 모험도 필요하지요. 100번대 철학 서가의 책등을 손끝으로 짚어가다가 생뚱맞게 사주명리학 책을 빼들어 봅니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주식 투자에 대한 책도 한번 펼쳐 보고요. 새로운 분야와의 만남은 나의 경계를 넓히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어요.
서가를 탐험하다 보면 '도서관에 이런 책도 있나' 싶은 신기한 장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웹툰의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만화책도 꽤 많이 구비하고 있어요. 엄숙한 도서관에서 몰래 펼쳐보던 만화책의 원조는 아무래도 허영만 작가의 <식객> 시리즈가 아닐까 합니다. 십여 권을 몽땅 뽑아서 책상 위에 욕심껏 쌓아두고는 읽던 어릴 적은 식객의 깊은 맛을 알기에는 아직 덜 익은 겉절이 같은 때였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명작의 맛을 다시 음미해 보아야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새로 들어온 책' 서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도서관 책들에 손때가 묻는 건 당연하지만, 아직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듯한 빳빳한 새 책을 만끽할 수 있는 '새로 들어온 책' 서가는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서점에 들어서면 백화점 쇼윈도를 둘러보듯 두리번대며 설레는 저와 동류의 분들이라면 이 기분을 아시겠죠? 맘에 드는 '신상' 책을 만나면 그렇게 들뜬다니까요.
꼭대기부터 가장 아래칸까지 책장을 꼼꼼히 훑어보려 맨바닥에 철퍼덕 앉는 과감함도 필요합니다. 이 책, 저 책 펼쳐보며 한참 쭈그려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리거든요. 일단 내 맘을 끌어당기는 책을 수집해서 한가득 껴안고 자리에 앉아 대출까지 할 책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도서관 오는 날은 특별히 에코백을 챙겨 오지만 그래도 너무 욕심 내서 10권 꽉 채워 빌리면 다 읽지도 못하고 반납해야 한다고요.
제 어렸을 때 꿈은 마을 도서관장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박유미 도서관'을 짓겠다는 원대한 꿈도 있었지요. 어린 유미를 키운 8할은 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거든요. 뜻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읽었던 철학책이며 대하소설들이 외롭던 어린 시절을 돌봐준 저의 보모들이었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도서관 책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거운 책을 척척 올리는 일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건 아마 어릴 적 포근했던 도서관의 기억 때문일 거예요. 가난한 사람도 풍요로운 사람도 모두 품어주는 도서관의 개방성, 그리고 지식과 철학에 대한 사랑은 어른이 되어서도 제 가치관의 일부분으로 남아습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가까운 도서관에 한번 들러보세요. 석양이 머무르는 익숙한 도서관 앞마당이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줄지도 모른답니다.
<여행 정보>
o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로 91-11
o 문의 전화 : 042-288-4770
o 관련 웹사이트 : http://www.seogu.go.kr/learning/gasuwonlib/index.do
o 가까운 버스 정류장 : 가수원육교 정류장 / 114번, 201번, 202번, 211번, 216번, 급행1번, 급행3번, 좌석2002번
o 가까운 주차장 : 가수원도서관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