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미디엄 볼드] 미완의 너를 사랑해

대전 대흥동 디자인 카페

by 박유미


글을 열며 고백합니다. '라이트 미디엄 볼드'는 제가 지금의 남편에게 좋아한다고 처음으로 이야기한 장소입니다.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복숭아 식에서 토마토 수프를 나눠먹은 남자와 라이트 미디엄 볼의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면, 당신이 누구라도 저처럼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너를 좋아한다고, 나는 네가 좋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단어마다 떨림이 묻어 나오는 얼굴이 동그란 여자애와 마주 앉았다면 그 누구라도 "그럼 우리는 이제 사귀는 거야."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대흥동은 맛집과 카페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원도심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전 문화의 중심지답게 고풍스러운 근대 건축물과 지역작가들의 갤러리도 발길 닿는 곳마다 있지요. 그 사이에서 라이트 미디엄 볼드는 어딘가 덜 정돈된 것 같은 '미완의 매력'이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건축재 마감이 투박하게 드러나는 건물 외관과 내부, 개성이 강한 친구들을 한 데 모아놓은 듯 제멋대로 놓인 테이블과 의자들... 꽉 짜이지 않은 거친 느낌이 낯설더라도 조금 더 들여다본다면 마치 소설의 '열린 결말' 같은 이 공간의 매력을 알게 되실 거예요. 텅 빈 배경에서 등장인물이 서서히 모여들면 사건이 벌어지고 소설의 정체성이 색깔을 갖춰가듯, 앞으로 카페에 어떤 사람들이 머무느냐에 따라 이 공간이 함께 완성되어 가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업실 한쪽 공간을 꾸며 카페로 만든 것 같은 이 카페. 언뜻 어려워 보이는 카페 이름이 타이포그래피 용어의 조합이라는 걸 알게 되면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 카페의 디자인 철학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섬세함과 무던함, 강함과 같은 소재들의 서로 다른 특성이 어울려 공간을 채우는 방식은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창조성을 자극하기 위한 배치의 결과물처럼 느껴집니다.


아슬아슬하게 놓인 돌계단을 오르면 예술가의 작업 공간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2층 다락에 도착해요. 실제로 작품 작업 중인 몇 분이 계셨는데 아마도 미대 학생들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았어요. 한적한 오후 시간에 구석 책상을 빌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펜을 들고 창작 작업을 하다 보면 나 자신과 만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근 카페보다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혼자 온 날은 음료 한 잔의 호사에 만족합니다. 케이크 전문점에 비해도 좋을 만큼 맛있는 이 곳의 케이크들을 진열장 너머로 구경만 해도 황홀하지만 맛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지요. 매번 손님이 꽉 차 있어서 아쉽게 돌아갔는데 이른 저녁에 도착하여 넓은 카페를 독차지한 것만으로도 참 좋았습니다. 파인애플 주스와 달콤 짭짤한 초콜릿 한 조각이라면 혼자 호화로워지는 기분도 꽤 괜찮아요.


사랑고백 하기에 좀 더 낭만적인 다른 장소가 많을 테지만, 라이트 미디엄 볼드에는 새로 시작하는 연인을 북돋아주는 특별한 힘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과정 중에 놓인 미완성의 서로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도록 해주는 그런 힘이요. 연인에서 부부로 이어져오는 동안 그 마법 같은 힘이 계속 되었으니 특별하다고 이름 붙여도 되겠지요. 다음에 여기 올 때는 처음 고백한 이래로 여전히 사랑스러운 저의 남편이랑 케이크를 나눠 먹어야겠습니다.



<여행 정보>

o 주소 : 대전 중구 보문로254번길 48

o 문의 전화 : 042-251-9886

o 가까운 버스 정류장 : 중앙로역6번출구 정류장 / 101번, 103번, 200번, 201번, 202번, 311번, 313번, 317번, 608번, 615번, 620번, 701번, 급행1번, 좌석2002번

o 가까운 주차장 : 대흥동 제3공영주차장(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로111번길 35), 대흥동 제4공영주차장(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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