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만년동 복합문화공간
당신은 마음이 허전할 때 발걸음이 절로 이끌어지는 친근한 미술관 한 곳을 갖고 계신가요. 외국의 명화를 소개하는 큰 전시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전시가 열리지 않아도, 그냥 그곳에 가면 넉넉해져서 머무르고 싶은 그런 미술관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을 마냥 쳐다보는 일이 난해하게만 느껴져 미술관이 익숙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현대미술 작품을 대할 때 거의 대부분 그런 기분을 느끼거든요. 특히나 ‘구성’이라든지 ‘무제’라는 제목이 달린 작품을 보고 있을 때는 맨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 막막함도 느껴요.
그런 제게 이응노 미술관은 한글도 못 뗀 손자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혼자 제멋대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뿌듯한 감상법이라고 우쭐대면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실 뿐. 왜 이리도 어렵냐는 투정을 들으실 때도 그저 마음 쉬었다가 가라고 품어주시는 그런 할아버지 같은 장소입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 예술의 전당, 대전 시립미술관, 대전 시립 연정국악원과 함께 대전 문화예술단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드넓은 한밭수목원을 뒷마당으로 거느리고 있으니 하늘에 계신 고암 이응노 화백도 꿈속에서 밤 산책을 즐기실지 모릅니다.
고암은 서양미술에 한지와 수묵이라는 동양화 매체를 사용한 ‘서예적 추상’이라는 작품 세계를 창조하여 세계 미술계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응노 미술관 건물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그의 작품인 ‘문자추상’이 나타난다고 해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들도 이미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있나 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고암의 작품을 앞에 두고 혼자 속으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통 모르겠다 싶을 때는 그냥 제 안에서 떠오르는 마음의 그림을 느껴봅니다. <동방견문록>이라는 연작은 그간 만났던 고암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었어요. 단순한 선과 색체로 표현된 동화 같은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 두근거리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신비로운 작품들이에요.
고암의 <군상> 시리즈는 이응노 미술관의 기획전 주제가 매번 바뀌어도 꼭 빠지지 않고 미술관 한 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붓을 들고 삐죽빼죽 그린 것도 같은 <군상>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몸짓을 하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축제 속의 환희인 듯, 시위 현장 속의 분노인 듯, 혹은 제각기 살아가는 인간사의 물결인 듯 보는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겠지요. 그러나 그림에서 휘몰아치는 생동감에 압도당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 같습니다.
이곳의 작품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당신이 옮기는 발걸음입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은 이응노 미술관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수긍하게 합니다. 마음이 호쾌해지는 대숲의 풍경을 마주하면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장관도 부럽지 않거든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창 밖에 시선을 던지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카페와 공연 장소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 공동체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응노 미술관에서 열린 재즈 공연, 네트워킹(인맥 만들기) 행사 등에 직접 참여하며 이 공간이 많은 사람들을 품어내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남편을 맨 처음 만났던 곳이 바로 이응노 미술관이라는 게 이 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지만요!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며 머물다 가도, 유리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걷기만 해도 참 좋은 이응노 미술관.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에 당신만의 작품 감상법, 당신만의 경험, 당신만의 마음도 한 층 더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여행 정보>
o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7
o 문의 전화 : 042-611-9800
o 관련 웹사이트 : www.leeungnomuseum.or.kr
o 가까운 버스 정류장 : 대전 예술의 전당 정류장 / 618번, 606번, 911번,
서구보건소 정류장 / 104번, 301번, 318번, 604번, 606번, 705번, 918번
o 가까운 주차장 : 대전 예술의 전당 주차장 (이응노 미술관 바로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