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인 글'로 나를 살리기
"혁아, 있잖아... 엄마 또 귀 만져서 염증 났다."
"어휴, 엄마도 참!"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또 그러고 말았어."
"엄마를 진짜 못 말린다, 못 말려. 왜 어른이 일곱 살 어린이도 안 하는 행동을 해요. 얼른 안과 가서 치료 받아요!"
"안과 아니고 이비인후과?"
내가 고치고 싶은 습관에 대해 일부러 아이 앞에 꺼내놓고는 한다. 나는 쉼 없이 아이에게 지적과 훈계를 하니까 반대로 아이가 나에게 잔소리할 기회도 주는 셈이다. 내가 완전무결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잔소리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아이를 내 입장에 세운다. 조잘조잘 떠드는 잔소리 덕에 내가 행동을 고치는 모습을 본다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도 했다.
아이는 내가 어젯밤 누워서 들려준 '안과에서 염증(다래끼) 치료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던 모양인지 '안과에 가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이번에는 염증이 좀 심하게 났다고 털어놓았더니 한숨을 쉬어가며 나를 채근했다. 무심코 귓구멍 바로 안쪽을 몇 번 건드렸을 뿐인데 진물이 흘러 딱딱하게 굳었다. 귀지가 좀 자주 생겨 번거로울 뿐 병원 갈 일은 아니었다. 안과를 이비인후과로 정정해주다가 '병원 안 가고 슬쩍 넘어가면 속상해하려나' 생각이 들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대충 대답을 둘러대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날 아파트 상가 3층의 이비인후과에 갔다. '무심코 몇 번 건드렸을 뿐'이라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꽤 한참 동안 집요하게 같은 상처에 내려앉은 딱지를 떼고 또 뗐다. 상처가 날 줄 모르고, 그게 상처인지도 모르고, 나는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의사 선생님이 작은 카메라로 내 귀를 들여다보며 혀를 찰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스스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면서도 아무 일도 없다고 믿는 악취미를.
울적한 기분에 빠진 지 오늘로 엿새 째다. 지난 금요일 처방 받은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어지러움 탓에 거의 누워지내다가 약을 바꾸고 또 바꾼 끝에 어제 오후가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 등이 섞인 알약 6개가 이리 요란스럽게 나를 뒤흔들 줄은 몰랐다. 귀에 난 작은 상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내 탓임을 깨닫고 수그렸다.
어지러워 누워 있는 동안 막막하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여 꽤나 고생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반박하고 싶은데 내가 지금까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살아왔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아 현재라는 섬에 갇힌 것처럼 외로웠다. 평소 자주 골골대던 편이라 피로감을 느끼며 누워있을 때도 곧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약 부작용이 전정기관 이상에 그치지 않고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에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몸이 점차 회복되고 비로소 과거의 나와 다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며칠 간의 무인도 생활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다. 머릿 속에서 정신 없이 뗏목을 찾아 헤매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글을 써야겠다고. 책으로 묶을 만한 구성을 갖추기 어렵다고, 나보다 더 멋지게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내 글은 요즘 출판가에서 환영 받을 종류가 아니라고 몇 겹의 변명을 휘두른 철벽을 무너뜨렸다. 쓰는 일이 나를 살릴 것이다, 이 믿음 하나로 오늘 첫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만약 또 다른 변명이 나를 찾아온다면, 너는 네가 바라는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또 스스로를 상처 낸다면, 나는 이 영상을 꺼내 내게 보여주려고 한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뚝딱 작은 책을 만들며 촬영한 영상. '글쓴이 박유미'가 적힌 장난스러운 이 책만큼 '나 자신인 글'을 쓰면 충분하다고 내게 말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