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가를 위하여

머물다가게와의 인터뷰

by 박유미

벌써 보름이 흘렀네, 머물다가게 유튜브 촬영 다녀온 지가. 머물다가게는 내가 대전에서 제일 좋아하는 서점이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넉점반 그림책방, 비블리오그라피, 바베트의 만찬, 다다르다 등 이 도시의 아름답고 세심한 서점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머물다가게는 다른 서점들과 뭔가 다르다. 내가 다른 멋진 남자들 중에서도 남편을 제일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좋음'처럼, 국어사전에서 '좋다'의 뜻으로 9번이나 10번에 등재되어 있을 것 같은 그런 '좋음'이 머물다가게와 나 사이에 있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어서 좋아한다고 설명해야만 한다. 가끔 나는 편협한 취향 탓에 책방 주인들이 사려 깊게 고르고 배치한 책들 앞에서 끙끙댄다. 머물다가게의 서가를 둘러볼 때는 그런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저는 그냥 이런 사람인데요..." 고백해도 "저도 그래요." 대답하며 손님방에 이부자리를 펴줄 것 같다. 머물다가게에 있으면 나의 모자란 부분에 딱 맞게 블록을 끼워맞춰 같이 굴러가는 기분이 든다.


내 편애는 고마움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른다. 머물다책방은 내 책 <낯설고 다정한 나의 도시>의 첫 북토크 장소였다. 세상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작가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책을 위한 북토크라니! 내가 '대전 작가'라는 이유 하나로 머물다가게는 기꺼이 행사를 열어주었다. 그렇지만 지역작가를 소개하는 유튜브 인터뷰에까지 초대해줄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출연하고 싶다고 내가 먼저 나서 번쩍 손을 들고 방방 뛰었다. 머물다가게 유튜브가 시즌1을 무사히 마치고 시즌2를 구상하며 숨을 고르던 올 여름. 책을 덮고 서점을 나서려던 내게 임다은 대표가 운을 뗐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이긴 하지만, 시즌2에서는 다양한 지역작가를 한 분씩 모시고 근황이나 작품에 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영상을 제작해보려고 하는데요... 나는 냅다 첫 방송에 초대해달라고, 잘 할 수 있다고, 지역라디오 인터뷰 경험도 있으니 자료를 보내드리겠다고 신나서 떠들었다. 예상 외의 호들갑이 즐거웠는지 임다은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마음이 든든하다고 답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두꺼운 점퍼를 두르고 머물다가게로 들어섰다. 호들갑에서 촬영까지 서너 달 걸렸다. 아무리 손을 높게 들었대도 머물다가게의 글쓰기 모임 '이글이글 드글드글' 소속 작가들 차례까지 앞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화면 가운데에 자리할 언젠가를 상상하면 그저 좋았다. 내 양 옆에는 두 진행자, 다니 작가와 바닥 작가가 앉아있을 테니까. 나는 둘 사이에 낀 채로 좋은 질문과 깊은 대화에 흠뻑 빠지는 순간을 기대했다. 그 흔치 않은 소통의 경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값진 기억 중 하나가 되리라. 나는 머물다가게에서 비롯해 대전 곳곳으로 퍼져나간 여러 번의 북토크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내 책을 읽고 내 삶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맞추기. 각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야기를 퍼내고 서로의 삶을 포개기.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타인과, 그리고 나 자신과 만나는 강렬한 경험은 매번 신비로운 예감을 남겼다. '살아가다보면 나 자신이 비루하고 허접하게 느껴져 견디기 부대끼는 때가 몇 번이고 찾아올 테지. 그때마다 나는 오늘 저녁의 기억을 꺼내 들여다보며 그 삶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귀한 게 내 삶에 있었다고, 나에게도 이렇게 귀한 게 있다고.' 머물다가게 대표의 짧은 소개만 듣고도 유튜브 인터뷰에 참석하고 싶다고 자진한 이유는 단순했다. 무언지 몰라도 내 삶에 꼭 필요한 게 거기 있으리라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기대 때문이었다.

점퍼를 의자에 걸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미리 받은 질문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 후라서 크게 긴장되지 않았다. 작은 마이크를 옷에 채우고 따듯한 차로 목을 축이자 너스레 떨 시간도 없이 바로 촬영이 개시되었다. 카메라를 보며 박수를 치자 두 진행자가 인사를 시작했다. 내가 긴장하지 않았다고 했던가? 아마 그건 오직 나의 바람일 뿐이었나 보다. 바닥 작가가 자연스럽게 던진 첫 질문에 머리가 멍해지고 목구멍이 막혀왔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고, 마치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입을 열어 말을 더듬으며 촬영을 멈췄다. 작가가 괜찮다며 달래준 덕에 다시 켜진 카메라를 보며 두서없는 이야기를 겨우 일으킬 수 있었다. 영상이 공개되면 남들 모르게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시청해야할 것 같다.


어떤 초년을 보냈기에 지금처럼 살고 있는지, 공무원과 작가 사이를 오가는 삶은 어떤지, 지금까지 낸 책들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주절주절 이야기하다보니 진행자들과 나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셋의 마음을 넘나들며 한 마디, 또 한 마디 달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도달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 그러나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저는... 제가 작가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리 전달 받은 질문 중 두어 개 앞에서 나는 한참 머뭇거렸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글쓰기 작업을 하는지', '작가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 계획인지'. 나는 <낯설고 다정한 나의 도시>를 펴낸 이후 단 한 글자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책을 낸 사람일 뿐이지 글 쓰는 사람은 아닌 것만 같다. 쓰고 있는 글도, 쓰고 싶은 글도 없는 사람을 작가로 불러주는 게 맞을까.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내 책과 내 글은 사람들이 별로 인정해주지도 않던데.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지난 3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일기를 썼더라고요." 많을 때는 하루에 3쪽이나 써댔던 그 종이뭉치들이 내 생활이자 내 글이었다. 나는 계속 좋은 작가가 될 준비를 했고 매일 빠짐 없이 작가였다. 그건 내게 부러움과 좌절을 안겨주는 그 어떤 유명 작가의 그림자로도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 나만의 글이었다. 바닥 작가와 다니 작가가 내 눈을 깊게 들여다 보았다. 이후로 우리 세 명이 주고 받았던 이야기들은 누구의 말이었는지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엮여 내 기억 속에 뿌리내렸다.


유튜브 촬영을 마치고 일주일 후 이비인후과에 다녀와 약 부작용으로 며칠 누워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몸서리 치듯 글 한 편을 쓰고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를 훌훌 털어냈다. 이렇게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는 건가. 아니, 새로운 글쓰기가 이렇게 내게 다가왔구나. 작가님이 내게 어느날 갑자기 새 글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는데, 뵙고 온 지 보름만에 소식을 전한다. 예감했듯 나는 그 토요일 오전을 아주 오래 기억하며 꺼내보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스스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