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3회 복싱장에 갑니다

나와 가장 먼 내게로 가는 길

by 박유미

일주일에 3번 복싱장에 간다. 어떤 주는 월수금, 또 어떤 주는 화목금. 호기롭게 일주일에 4번 와도 되냐고 관장님께 여쭤봤다가, 이틀 연속 출석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란 걸 바로 다음 날 깨달았다. 신규등록한 지 고작 한 달하고 일주일 지났는데 그 사이에도 아프다고 몇 번을 빠졌다. 줄넘기 하고는 어지럽다고 집에 가버린 적도 있다. 주3회 출석은 기본이 아니라 목표다. 오늘 무사히 운동을 끝내 이번 주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주3회'를 강조해 적으며 기쁨을 만끽해 본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오전 11시에 복싱장에 도착하면 큰 소리로 인사부터 시작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관장님이 깍듯하게 화답한다. "어서오세요!" 늘어놓은 글러브 개수만 대충 세어봐도 수강생이 꽤 많은 것 같은데, 퀘퀘한 땀냄새커녕 누군가 사용하고 간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관장님이 어찌나 철저히 관리하시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막 개업한 필라테스 학원이나 리모델링을 마친 헬스장과는 뭔가 다른 정갈함. 비누로 빡빡 씻고 향긋한 스킨을 바른 아저씨가 잘 개어 놓은 운동복을 꺼내 입은 느낌이다. 내가 마음껏 펀치를 날리는 자그마한 샌드백은 몇 번이나 헤지고 터졌는지 위쪽 전체가 청테이프로 둘둘 감겨있다. 꽤 말끔히 수선한 덕에 낡고 허름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가쁜 숨을 고르며 목적 없는 눈길을 벽면에 두면 다닥다닥 붙은 2014년도 생활체육대회 수상 사진이 보인다. 저 청년이 지금은 내 나이 또래일지도 모르겠다.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관장님의 잽싸고 정확한 시범동작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관장님은 이런 날렵한 몸놀림으로 복싱장을 씻기고 보살펴 오셨나 보다.

복싱화로 갈아신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색색의 줄넘기 수십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어쩐지 자꾸 걸린다고 줄넘기 탓을 하고 싶을 때면 다른 애로 다시 골라 본다. 처음 관장님과 통화한 날이 떠오른다. "저... 줄넘기를 하나도 못 하는데 복싱을 배울 수 있을까요." 관장님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셨다. "줄넘기 안하고도 할 수 있어요. 제자리뛰기를 해도 되고요." 첫 수업 날, 한 번만 줄을 넘어보라고 하셔서 간신히 딱 한 번 넘었다. 두 번, 세 번까지 겨우 넘었지만 커다란 바위를 공중에 띄우는 것처럼 뒤뚱거렸다. 한 주, 또 한 주 지나면서 넘을 수 있는 횟수도 늘고 몸도 가벼워졌다. 한 차례 뛰고 나면 헉헉거리며 한참 숨을 골라야 했지만 이제는 피곤도 덜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짧아졌다. 어쩌면 나는 쉬지 않고 줄넘기 200번을 할 수 있는 사람, 양발을 번갈아가며 디디면서 줄을 넘을 수 있는 사람, 줄넘기라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뒤로 흔들거리다가 연속으로 왼손 쨉을 날리고, 골반을 살짝 틀며 오른손 펀치에 힘을 실었다. 관장님이 주는 신호에 따라 원투원투 주먹을 뻗으며 허우적거리고 뒤로 총총 달아났다가 다시 한 방 휘두르기. 체력이 부족해 몇 차례 움직이면 허리가 푹 꺾이며 거친 숨이 터져 나온다. '끄어어어', '어억' 같은 소리를 토하듯 내뱉었다. 언제나 그렇듯 빙그레 웃으며 기다리는 관장님을 의식하며 천천히 허리를 편다. 힘껏 샌드백을 치며 몇 번 더 허리를 구부렸다 펴고 관장님의 성화에 맞춰 연타를 퍼붓고 나니 오늘 수업이 끝났다.


너무 더워서 반팔만 입은 채로 복싱장을 나섰다. 코트와 점퍼를 바짝 여며입은 아주머니들로 가득한 청과물가게에 들어설 때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겉옷을 둘러 대충 몸을 가렸다. 영상 4도 겨울 파티의 드레스코드를 준수하는 마음으로 두꺼운 옷을 얌전히 꿰입은 채 집까지 걸어갔다. 어쩌다가 난데없이 복싱을 시작했더라. 장난스럽게 살짝 치는 손길조차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겁쟁이에게 격투기는 너무나 먼 세계였다. 아쿠아로빅도, 필라테스도, 달리기도 시원찮게 발만 담그고 끝내는 나에게 시무룩하던 그런 날. 내가 뭔가 더 시도해볼 수 있을까 막막하던 그런 날. 복싱이라면 '나와 가장 멀리 있는' 운동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몸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이제 복싱을 배운 지 6주차,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아주 멀리 있어서 알지 못했던 나를 향해 조금씩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리에 눈이 쌓일 때쯤이면 당당히 반팔로 활보하는 내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이야기